'스티로폼 외벽' 불쏘시개 … 순식간에 건물 세 채로 번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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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이 숨진 경기도 의정부시 오피스텔 건물 화재 사건을 놓고 부실 소방점검 논란이 일고 있다. 약 3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소방점검에서 ‘이상 없다’는 평가를 받았는데도 자동화재탐지설비(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는 주민들 증언이 이어져서다.

 11일 의정부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10일 처음 불이 난 대봉그린아파트와 불이 옮겨붙은 드림타운Ⅱ는 지난해 10월 15일 화재경보기와 소화전·소화기 작동 여부 등을 살펴보는 소방특별조사를 받았다. 결과는 모두 ‘이상 없음’이었다. 하지만 정작 불이 났을 때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불투명하다. 경보음을 듣고 뛰쳐나왔다는 주민도 있고 전혀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주민도 있다. 화재 당시 대봉그린아파트 9층에 있던 김모(22·여)씨는 “경보음이나 안내방송은 전혀 듣지 못했다”며 “사람들 비명 소리를 듣고 옥상으로 대피했다가 소방헬기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만일 경보기가 울렸다면 듣지 못했을 리 없다”고 덧붙였다.

 불이 마지막으로 옮겨붙은 해뜨는마을아파트에서도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주민 김모(33·여)씨는 “오전 10시40분쯤 사람들이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 대피했다”며 “경보기는 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소방점검을 받지 않았다. 의정부소방서 측은 “화재경보기는 층마다 설치돼 있다”며 “이 중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10일 화재는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처음 발생했다. 기둥만 있고 사방이 트인 구조(필로티 구조)의 주차장 오토바이에서 오전 9시15분 불이 붙은 뒤 바람을 타고 옆 드림타운Ⅱ로 번졌다. 드림타운Ⅱ는 트인 주차장이 대봉그린아파트와 맞붙어 있다.

 두 건물 모두 스프링클러가 없는 데다 외벽이 잘 타는 구조여서 불은 삽시간에 건물을 타고 올라갔고 다시 옆의 해뜨는마을아파트로 옮겨붙었다. 세 건물 외벽은 1.5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또 벽은 하나같이 콘크리트 외벽에 불에 잘 타는 단열재 스티로폼을 붙이고 그 위에 얇게 시멘트를 덧발랐다. 콘크리트 벽 사이에 단열재를 넣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드라이비트’ 공법이다. 백동현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이는 건 사실상 불쏘시개를 붙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화재 발생 6분 만에 소방차 40여 대가 출동했으며 불은 오전 11시44분쯤 꺼졌다. 이날 화재로 안현순(68·여)씨 등 4명이 숨지고 124명이 다쳤다. 부상자 가운데 11명은 중상이다. 불이 난 곳은 대부분 면적 30~50㎡ 원룸이어서 20~30대가 주로 피해를 봤다. 사망·부상자 128명 중 77%인 99명이 20~30대였다. 이재민은 225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대부분 인근 경의초등학교에 머물고 있다.

진옥진 소방사

 불이 처음 난 대봉그린아파트에서는 주민인 소방관이 이웃들을 긴급 대피시켜 피해를 줄였다. 8층에 사는 의정부소방서 진옥진(34) 소방사는 이날 집에서 쉬던 중이었다. 불이 나고 주민들이 우왕좌왕하자 그는 “절대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 질서를 지켜라”고 외치며 주민들을 10층 옥상으로 대피시켰다. 이어 맞붙은 옆 건물 옥상에 판자를 걸쳐 주민 13명이 건너가게 했다. 진 소방사는 유독가스를 마셔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경기경찰청은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대봉그린아파트 주민 A씨가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대고 올라간 뒤 오토바이 배터리 근처에서 불꽃이 튄 것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배터리 합선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의정부=전익진·김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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