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2년 전 “김대중 될 거다”…北, 고은 포섭 지령 내린 까닭 [스파이전쟁 1부-남파간첩 ⑨]

  • 카드 발행 일시2024.06.26

〈제1부〉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9화.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운동권 포섭은 완벽한 실패였다. 1980~90년대 학생 운동권을 주름잡던 이인영·허인회·우상호·함운경·황광우·정동년 6명을 상대로 한 공작은 무위로 끝났다. ‘공화국영웅’ 영예를 안겨준 90년의 1차 남파와 달리 95년 2차 남파에선 패색이 짙어만 갔다.

절망은 부질없다. 김동식은 운동권 포섭보다 더 중차대한 작전에 운명을 걸었다. “남한에 잠복 중인 대남공작원 ‘봉화 1호’를 접선하고, 그가 포섭했다고 보고한 ‘고봉산’을 접촉해 ‘남한의 대권주자’와 핫라인을 구축한 뒤, 봉화 1호를 데리고 북한으로 복귀하라”는 지령을 완수해야 했다.

봉화 1호는 80년 봄 남파된 충청도 출신의 북한 공작원 대호(암호명)다. 26년생으로 6·25 때 월북한 이후 결혼해 아들딸 7남매를 낳고 살다가 대남공작원으로 차출돼 15년간 남한에서 암약 중이던 고정간첩이다. 북한 권력 서열 22위였던 ‘할머니 간첩’ 이선실에 비견될 정도로 거물이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장관급)에 오른 인물이다.

“고은 포섭하라”

90년대 초반 봉화 1호에게 북한에서 지시가 하나 떨어졌다.

고은을 포섭해 불교계에 장기 토대를 마련하라.

얼마 후 봉화 1호는 “고은 포섭에 성공했다”고 회신했다. 북한은 고은에게 ‘고봉산’이란 공작대호를 명명했다. 훗날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바로 그 고은 시인(이하 존칭 생략)이었다. 당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통일운동에 앞장선 재야인사로 유명했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김정일이 건배를 하고 있다. 김 대통령 오른쪽 옆에 고은 시인이 보인다. 중앙포토

2000년 6월 1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김정일이 건배를 하고 있다. 김 대통령 오른쪽 옆에 고은 시인이 보인다. 중앙포토

고은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관계는 각별했다. 98년 2월 DJ의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어 찬시를 헌정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DJ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고은은 만찬장에서 “우리 민족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며 ‘대동강 앞에서’를 낭송하고 김정일과 건배했다.

고은 포섭은 더 큰 그림의 일부였다. 노동당 사회문화부(대남공작부서) 이원국 부부장(차관급)이 2차 남파를 앞둔 김동식을 불러 ‘대권주자 DJ와의 핫라인 구축’에 관한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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