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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돌풍」뒤숭숭한 일정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KGB(소련비밀경찰)소령「레프첸코」의 폭로증언은 일본국내 정계에 미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정부·자민당은「레프첸고」가 폭로한 26명의 일본인협력자중 사회당의원이 2명이나 실명으로 포함돼있어「다나까」(전중각영)사직권고안 등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는 국회대책이나 앞으로의 선거에 이번 사건을 이용할 것 같다. 자민당총무회는 15일 외무성당국자, 19일에는「고또오다」(후등전정청)관방장관을 불러 정부측의 조사결과 보고를 들을 예정이다.
지난12일 총무회에서도「가네마루」(김환신)의원등은「레프첸코」증언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들어야한다고 열을 올렸고 13일 3선의원만이 모인 자민당내 혁정회에서도「나까소네」 (중수근강홍)수상을 앉혀놓고 참석의원들이『진상규명을 위해 당내 조사위원회를 설치하자』.『실명이 드러난 정치가치를 국회에 증인으로 소환하자』『일본이 스파이 천국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스파이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경한 주장을 폈다.
이같은 자민당내 움직임의 배경에는「가쓰마다」(방간전청일)·「이또」(이등무)두 의원의 이름이 공표된 사회당을 궁지에 몰아넣어 국회에서 야당측의 공세를 둔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정계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물론 자민당에도「이시다」(석전박영·전노동상)의원이 들어있으나 당내 주류파에서는『 「이시다」씨가 당요직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레프첸코」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더라도 당집행부에는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개의치 않고 있다.
당내주류파가 같은 자민당의「이시다」의원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이시다」씨가 비주류인「고오모또」(하본민부)파이기 때문에 야당과 당내 비주류파를 동시에 견제할 절호의 찬스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일본경찰청은 지난 3월 하순 관계자를 미국에 파견,「레프첸코」본인으로부터 직접 몇차례의 증언을 들은바 있어 정부로서도 독자의 정보를 쥐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측은 조사내용에 대해 일체 공표를 거부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이것도「다나까」사직권고결의안이 국회에서 논의될때 제1야당인 사회당과의 거래자료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아니냐고 보는 측이 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정부·자민당이 기밀보호를 위한 스파이 방지법등 입법조치를 취할것이냐는 점. 그동안 당내국방관계의원들 사이에는 일본도 스파이 방지법을 제정해야한다는 주장이 여러차례 제기돼왔다.
이들은 이번「레프첸코」사건을 그 실현을 위한 절호의 찬스로 보고 정부측에 입법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미국등으로부터『서방측정보가 동경에서 소련측으로 새나가는 것은 곤란한 일』이라고 여러차례 기밀보호에 관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청을 비공식적으로 받은바 있어 이번 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정부가 과연 반스파이법을 세정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아직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입법으로「자유언론」「정보의 공개」를 견제하려한다는 비난을 듣는 것보다 은밀히 야당·언론계등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이를 정치적인 흥정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것이 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평론가 산본강토).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사회당은「레프첸코」증언을 게재한 리더즈 다이제스트지의 출판을 기다려 변호사와 협의, 법적조치를 강구하는등 대항책을 마련중이다.
그러나 사회당대에도 친중공파측은『「레프첸코」증언대로는 아니라도 친소파의원 가운데 의심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고 다닌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있어 복잡한 당내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당집행부에서는 문제를 크게 하는 것보다 묵살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의견도 강력히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다나까」사직권고 결의안을 공동으로 내놓고 있는 공명당·민사당등 중도파는 이문제로 사회당을 공격하는 것이「나까소네」정치에 대한 비판무드에 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입장에서 역시 관망할 태도를 보이고 있다. 「레프첸코」사건은 국내정당파벌간의 이해 때문에 자칫하면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는 결론이다.【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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