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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생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일본의 정치인들, 지식인들이 소련 KGB(비밀경찰)의 눈엔 한낱「생쥐」의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일본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KGB에 포섭된 일본인들. 바로 이들은 동경주재 KGB요원들의「마이스」(mice)로 불리는 포섭술에 걸려들었다.
「마이스」는 머니(금전), 이데올로기(이념), 콤프러마이즈(타협), 에고 (이기심)의 두문자를 딴 합자. 그것이「생쥐」라는 뜻과 일치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자민당출신의 전노동상, 사회당의 전당수, 현직 중의원 의원, 평론가, 어느 신문의 편집국장. 그면 면들은 어디로 보나「생쥐들」같지는 않다. 그러나 꼼짝없이 KGB의 끄나불이 되고만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런 사실들은 KGB 동경주재부에 근무하다 미국에 망명한「레프첸코」라는 KGB 거물에 의해 폭로되었다.
전후 38년, 평화의 온실 속에서 태평연월을 구가해온 일본인들의 백치같은 저압세계를 보는 것 같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바라보는 선진국민들, 그 중에서도 영향력 있는 엘리트들이 돈앞에 자신의 신념(이데올로기)도, 인격도 모두 버리고 말았다. 「생쥐」라는 말이 이들에겐 제격인 것도 같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란 나라의 잠재력이다.. 「무력」의 깊이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보의 잠재력. 최근 프랑스가 주불 소련대사관직원 47명을 간첩혐의로 추방한 것도 미국의 정보제공에 의한 것이었다.
서독도 이미 몇 차례나 그런 조치를 내렸었다. 일본 역시 미국이 제공한 정보에 의해 최근 그와 같은 KGB음모를 알게되었다.
현대국가의 힘은 바로 정보의 축적에 있다. 정보의 축적은 곧 경제력으로 가늠된다. 미국이 아직도 강한 것은 그런 정보기술에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속의 소련스파이 사건이 암시하는 또다른 중요한 사실은 소리 없는 기술전쟁의 양상이다. 소련은 기술정보수집에 거의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미국, 스위스, 프랑스, 서독, 일본등에서 적발된 KGB의 중요 음모는 예외없이 과학기술 양지였다.
미 국방생이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미·소군사 기술에 관한 연차보고서」는 군사기술분야에서 미국의 기술은 소련보다 15대1로 앞서고 있다고 평가했었다. 미국은 그 면에서 소련보다 적어도 10년 내지 20년은 앞서 있다는 얘기다.
사실 전자정보시대에 상대국의 군사동향을 정탐하는 스파이행위 따위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 문제는 기술의 탐지다. 소련은 KGB의 음모를 통해 결국 스스로의 약점만 드러내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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