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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나온 지휘관 전쟁 못해" … 군단장급, 50대로 물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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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3월 16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함경남도 원산 인근 사격장으로 북한군 군단장급 지휘관들을 소집해 사격대회를 열었다. 그는 지휘관들부터 전쟁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제1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령의 지휘관들이 맨땅에 엎드려 소총 사격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한 뒤 북한 군에는 인사 태풍이 불어닥쳤다. 2011년 12월(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지난 3년 동안 군의 지휘부인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은 6개월이 멀다 하고 교체됐다. 계급도 고무줄이었다. 국방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의 장성들은 언론에 등장할 때마다 사진에 나온 계급을 잘 봐야 할 정도로 계급의 부침이 잦다”며 “심지어 한 번에 두세 계급이 강등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보 당국은 이 같은 북한군 간부들의 고무줄 계급을 새로운 전쟁계획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정보 당국자는 “개인 비리가 발각돼 계급이 강등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작전계획 수립과 훈련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지휘관들이 대상”이라고 말했다. 2012년 8월 김 제1위원장이 승인한 새 작전계획의 준비상황이 미흡할 경우 교체하거나 계급을 강등시키는 징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6월 잠수함 부대를 현지 지도하던 중 잠망경을 보고 있다. [노동신문]

 지난해 육·해·공군 주요 지휘관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격대회(3월), 수영대회(7월), 비행대회(10월)에서도 기준 미달자들은 계급이 강등되거나 교체됐다. 북한군 동향에 정통한 당국자는 “김정은이 ‘배가 나온 사람들은 전쟁을 할 수 없다’며 지휘관들의 솔선수범을 강조하고, 군단장급(상장·별셋)의 80% 이상을 상대적으로 젊은 50대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전을 일으킨 4군단 이성국 상장의 경우 40대 후반이다. 신 작전계획에 따른 전쟁준비를 하면서 북한군에 고위간부 물갈이 바람이 휘몰아친 셈이다.

 특히 김정은은 비대칭 전력을 활용한 전쟁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신 작전계획에서 전쟁 발발 뒤 7일, 늦어도 최대 15일 이내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을 세운 게 대표적이다. 미군의 증원 전력이 한반도에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전쟁 초기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 무기를 활용한다는 방침을 작전계획에 담았다.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방사능에 오염된 한반도에 미군이 들어오기 어려운 데다 남측 지도자들이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항복할 수도 있다는 계산에서다. 군 관계자는 “일본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항복한 것처럼 북한도 이 같은 상황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에 이어 지난해 18차례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3년 동안 전방 에 모두 5500여 문의 방사포를 배치했다. 정규군이 사용하던 방사포는 신형으로 교체하고, 구형을 예비군인 노농적위대에 넘기고 있다. 김정은은 포병 부대를 불시에 방문해 초시계를 들고 실사격까지 걸린 시간을 점검할 정도라고 한다.

 특수전 부대도 김정은이 강조하는 비대칭 전력의 하나다. 김정은 집권 후 기존 8만 명이던 특수전 인력은 20만 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전방 예비사단을 산악보병여단으로 개편해 특수전에 참여토록 했다. 군 당국자는 “남한으로 내려오는 주요 도로나 지점들은 우리 군이 대비를 하고 있으니 산이나 공중으로 침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수부대원을 운반하는 저공침투용 항공기인 AN-2기에 최근에는 행글라이더를 동원한 훈련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 시대엔 거의 없었던 고공침투 낙하훈련을 지난해 1만2000명이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노후화로 창고에 넣어둔 미그-15·미그-17 전투기를 꺼내 훈련하다 추락하는 일도 발생했다. 군 당국자는 “최근 여군 조종사를 양성하는 등 공군병력을 1만 명으로 늘리고 옛날 비행기를 활용하는 것으로 미뤄 유사시 ‘가미카제’식 자살특공대 전략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비대칭 전력=상대방이 보유하지 않아 비교우위에 있는 전력. 핵무기·생화학무기·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기를 포함해 잠수함이나 특수전 요원들이 해당된다. 전차 등 재래식 무기 증강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상대의 취약점을 공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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