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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관악기 불모지? 이젠 외국서 모셔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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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호른 수석으로 임용된 김홍박씨. 서울시립교향악단, 스웨덴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을 거쳤다.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호른 연주자들은 천국에 많이 간다고 한다. 생전에 기도를 많이 해서다. ‘연주할 때 실수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지인·청중의 기도도 유발한다. ‘틀린 음 들리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이른바 호른 조크다. 그만큼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로 이름났다. 여기에서 ‘호른’은 몇몇 악기로 바꿔볼 수 있다. 트럼펫·트롬본·튜바 등 오케스트라 가장 뒷줄에 포진하고 있는 크고 무거운 악기들이다. 이런 관악기는 조금만 잘못 불어도 음정이 어긋나거나 소리가 달라진다. 또 악기가 클수록 실수가 귀에 잘 들린다. 연주자는 체격·체력도 좋아야 한다.

 국내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줄에는 외국인 용병이 많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경우 호른·트럼펫·튜바 단원 총 12명 중 7명이 외국인이다. 현악기 파트는 다르다. 악장을 포함해 제 1·2바이올린 주자 37명 중 외국인은 3명이다. 그래서 ‘한국 연주자들이 다 잘해도 부는 악기는 잘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피아노·바이올린·성악 연주자들이 해외에 나가 ‘K 클래식’이란 말을 만드는 동안 관악기 주자들은 비교적 잠잠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한국 관악기 주자들이 외국으로 나간다. 호른 연주자 김홍박(34)은 북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수석으로 지난달 임명됐다. 메이저급 오케스트라의 첫 한국인 호른 수석이다. 그는 2012년부터 스웨덴 왕립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고, 지난해 오슬로 필하모닉 오디션에 합격했다. 시험기간을 거친 후 수석 임명을 받았다. 김홍박은 런던 심포니의 오디션에도 합격해 놓은 상태다.

 ‘부는 악기’의 잇단 쾌재는 최근 트렌드다. 플루트 연주자 조성현(25)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첫 연주를 이달 4일 치렀다. 바순을 연주하는 유성권(28)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이다. 플루트 연주자 손유빈(30)은 2011년 뉴욕필하모닉의 종신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노르웨이 트론트하임 심포니에는 바순 수석 최영진(40)씨가 있다.

유성권 (바순, 左) 손유빈 (플루트, 右)

 ◆어릴 때 시작하고=한국인은 왜 잘 불게 됐을까. 김홍박은 “어릴 때부터 관악기를 잡은 연주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악기·피아노는 어려서부터 탄탄히 기본기를 닦은 이가 많았는데 관악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관악기로 음악을 시작해 깊이있는 훈련을 한 사람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김홍박은 14세에 호른을 시작했다.

 실제로 어린 관악 연주자가 늘어났다. 14세 미만 영재 선발 프로그램을 1998년 시작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따르면 2013년 관악기 영재는 32명이다. 99년엔 10명, 2007년만 해도 16명이었다. 이 재단의 박선희 음악사업팀장은 “음악 영재들의 악기 선택이 다양해졌다. 한국 음악계의 기초 체력이 튼튼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주인구 늘어=무엇보다 관악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김영률 서울대 음대(호른 전공) 교수는 “우리나라 음악대학이 성악과·작곡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관악기는 한동안 관심밖에 있었다”며 “내가 80년대에 미국 유학 갈 때 거의 첫 해외 유학이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후 경제도 발전하고 청중의 관심 영역이 넓어지며 관악도 조명을 받았다. 김 교수는 “특히 오케스트라 청중이 늘어나면서 오케스트라 음색을 좌우하는 관악기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관악 연주자의 인구가 늘어났고 실력이 자연히 향상됐다는 설명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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