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팔도명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꽃 피자 술익고 / 달 밝자 벗이 왔네 / 이같이 좋은 때를 / 어이 그저 보낼소냐 / 하물며 사미구하니 / 장야취를 하리라.
요즘 시는 아니다.
2백여년전 이정보가 읊었다.
꽃과 달과 벗과 술-, 사미구를 노래할 수 있는 전원의 정취는 상상만해도 흐뭇하다.
오늘이라고 사미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야취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앞선다.
필경 애주가라도 그럴 것이다. 무슨 술을 마셔야할지가 문제다.
소주, 맥주, 번드르르한 양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야취 하기엔 하나같이 마음에 걸린다.
고쟁에 평원독우(구원독우)라는 술이 있다.
악주를 이른 말이다.
중국 송의 고서 『세설신어』에 나오는 얘기. 진환온의 어느 하인이 지어낸 속어로, 호원지방에 격(예)이라는 고을이 있었다.
흔히 나쁜 술을 마시면 가슴(격=격)에 오르내려 그처럼 문자를 쓴 것 같다.
그대신 미주는 청주종사라 했다.
역시 음주지방에 제(제)라는 고을이 있었는데, 좋은 술은 배꼽(제=제)까지 내려간다는 뜻으로 그런 유식한 술랭을 붙였다.
소주는 비록 원나라에서 전래된 술이긴 하지만, 벌써 고려때부터 우리 선조들이 즐겨 마셔왔다.
한자로는 요주 또는 소내라고도 한다.
「내」자를 쓴 것은 세번이나 고아서 증류(증류)했다는 뜻. 조선왕조 무렵만 해도 소추는 「사치스리운 술」로 한때 금령까지 내렸다.
몸이 쇠약했던 단종은 소주를 약으로 마실 경도였다.
그 향미는 생각할 나름이지만 임금의 약주니 여북했을까.
그 소주가 일제치하에서 그만 맛과 질이 변했다.
종래의 밀기울이나 쌀로 빚은 누룩이 아니고, 만주산 좁쌀이나 수수를 원료로 쓰게된 것이다.
흔히 술마신 뒤에 머리가 아프거나 좀더 지나치면 악심, 구토, 악한이 드는 것은 증류에 문제가 있다.
화학적으로는 그 악취의 범인을 「아세트 알데히드」와 퓨절(fusel)유로 지목하고 있다.
술속에 함유된 메틸알콜은 바로 우리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메틸알콜이 체내에서 흡수, 산화하는 중간과정에서 아세트 알데히드라는 독물질이 발생한다.
이것이 다시 탄산가스와 물로 분해되기까지 핏속에 머무르며 두통을 일으킨다.
덴마크의 어떤 약학자는 이런 화학작용에서 힌트를 얻어 혐주제(혐주제)까지 만들어 냈다.
「술 끊는 약」이다.
퓨절유는 아밀 알콜과 같은 다탄소알콜을 말한다.
알콜이 발효하는 과점에서 생성된다.
이것 또한 술마신 사람들의 머리를 무겁게 만든다.
이런 불순물을 될수록 많이 제거한 술이야 말로 청주종사가 필만한 미주다.
서양의 이름난 술들은 증류과정에서 그런 물질들을 말끔히 걸러낸 술이다.
우리나라는 토속주나 고래주로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데 오늘은 그 명맥조차 없다.
어떤 술은 개발되었지만 방부제를 퍼부어 모처럼의 기대를 저버렸다.
정부가 지원하는 이번 8도의 명주는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