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될꼬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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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천당아니면 지옥엘 갈테지만 죽은장소가 외국이면 진토가 돼 자기 나라 영토구실도 한다.
누가인정하고 안하고는 둘째 문제다.
「루퍼트·브루크」영국밖에서는 금방 알아줄 이름은 아니다.
1차대전때 나이 갓 서른이 채 못돼 죽은 병정이자 시인이었다.
그의「병사」라는 시를 우리말로 그럴듯하게 옮길 재주는나한테 없다.
그저 뜻만을 전하면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건 싸우다 죽어 내 몸이 한 줌의 흙이 돼 묻히면 그것은 그 흙으로 하여 영원한 영국땅일 것이라는내용이다.
『그러면 기억해 주오, 동포들이여. 묻힌 내골신, 한줌의 흙으로 하여, 그 땅은 영원히 영윈히 영국일 것을』하면 지금도 여기 중학생급이면 「영원히」 쯤부터 목청을 돋워 더불어 외어내리는대목으로 돼있다.
우리 성삼문의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가 우리 중학생이면 낯익은 것과같다.
그 풍에서야 우리「낙낙장송」이나「독야청청」만큼은 못된대도 그 기운에서는 꽤 거칠고 줄기찼었다.
대영제국에도 그런 맹하의 철은 있었던게다.
정말 지구 어느 구석진 곳에서건 죽어 넘어지면 시신을 본국에 데려가지 않았었다.
해양시대에 나르는 것이 어려워서기도 했겠다.
시신을 보는 눈이 우리와 다르기도 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쓰러진 데서 묻힌다」는게 언제부턴가 전통이 돼 왔기때문이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영예자, 제국의 영광이 주는 축복이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병정으로 이 세상 구석구석에 묻힌게 어림잡아 2백만명. 「브두크」의 영국은 꽤도 넓었던 셈이다.
지난 여름 포클랜드 전쟁때에도 한 3백명의 영국병정들이 죽었었다.
그런데도 그 태반이 영국에 환송돼 묻혀져왔다.
까닭은 그들을 본토에 데려다 묻고 싶다는게 유가족들의 염원이었었고 정부가 이에 쾌히 응했기 때문이었다.
역사란, 시간이란 틀림없이 흐르는건가 보다.
전쟁터에서 역시, 한 인간의죽음이란 1차적으론 아들의 죽음이요, 남편의,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건 워낙 식구들끼리의 조촐한 슬픔의 자리지, 무슨 커다란 영광이란 것이 주악될 자리도 아니었는지모른다.
목관들이 윤송선에서 내린다.
「브루크」의 제국이 또한 같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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