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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망국- 항일- 구국의 발자취 재조명|「단절된 시대」의 「과거」풀어 교훈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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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잃어버린 36년- 그것은 민족이 자주성을 잃고 역사의 뒤안에 밀려났던 단절의 시대다. 비극의 역사는 국제적 진전과 연결되어있다고들 하지만 유린자가 일본이라는 것은 부가해한 일이라고도 한다. 사실 19세기 전반까지만해도 일본은 동아시아의 주변을 맴도는 미개한 섬나라에 불과했다. 그들은 한반도를 매개로 하는 대륙문명의 수혜자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속으로 흘러오던 서양문명에 먼저 눈을 떴다. 일본은 문호를 개방한지 10수년만에 이른바 「명치유신」 의 새 체제를 완성하고 대륙을 향한 거대한 가해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불행히도 일본의 대륙 팽창정책의 촉수에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이 한국이었다. 막부말기부티 일본조야를 풍미하던 정한의 의지는 끝내 1910년 병합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화로 결실 했다.
그로부터 36년간의 일제지배사는 우리에게 통절한 아쉬움과 참담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서양 포함외교의 대상이 됐던 일본과 한국이 어떻게 해서 불과 반세기를 사이에 두고 식민지종주국과 피지배국이란 무비의 격절을 연출해 낼 수 있었는가. 이런 물음에 자신있는 해답을 내려줄 사람이 아직은 없다. 그러나 쇄국이란 정책의 스타트라인은 같았지만 한국이 시종일관 대외봉쇄의「도그머」를 고집하고 있을 동안 그들은 재빨리 문호를 열고 친서방 노선으로 회전했다.
한국이 결승점에서 까마득하게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이같은 국가적 임기응변력의 결여에서 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충분히 경청할만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는 우리에게는 질로 파천황의 국난이었다. 흔히 말하듯 반만년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리면서도 우리는 단 한번도 다른 민족의 시민지 지배하에 굴복한 일이 없었다. 일본의 한국병합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교살한 굴욕이고 굴종이었다.
그것은 역사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했다. 모든 고유의 가치는 부정당하고 우리 민족에게 이어져 내려오던 동질성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들은 민족의 권위와 존엄성의 마지막 흔적까지 말살하려했다. 무익한 살상, 무분별한 수탈, 가증스런 억압위에서 제국주의 팽창정책은 이땅의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었다. 8·15를 맞았을 때 한국사회에는 독립으로 이끌 주체세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은 식민통치의 탄압이 얼마나 철저하고 집요했던가를 말해준다. 분명 그 기간 우리민중은 그들의 총칼아래서 인간이 아닌 노예의 삶만을 강요당했다.
이렇게해서 일제 36년은 우리 민족에게 악몽을 되돌아보기보다는 차라리 잊어버리는게 낫다는 치유불능의 패배주의마저 심어주었다.
일제지배의 사슬에서 풀려난지는 올해로 39년째가 된다. 일본의 강점기간인 36년의 키를 넘긴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기록이 체계있게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 점이 이 기획들을 연재하게된 이유의 하나다.
어두운 식민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진실에 바탕을 둔 기록의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많은 기록들은 우리들 모두에겐 들춰지지 않은채 있다.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이들 기록을 탐색하고 있다. 이들 자료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제한된 부분에서나마 사실들이 묻혀 있음을 제기해야할 시간이다.
여기에는 이재 인생의 종장에 다가서는 식민세대의 체험담과 증언도 중요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입수할 수 있는 사료들을 찾아 사실에 가장 접근하는 입체도를 제한된 부분에서나마 만들어 보자는 것이 우리의 욕심이다.
이 기획의 참된 의도는 장식의 허와 실을 가려내고 그동안 우리들이 줄곧 갇혀왔을지도 모를 우상의 벽을 깨뜨려 보려는데 있다.
우리는 일제하 36년간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있는가, 안다면 얼마나 알고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이 연재물을 관통하는 기본전제가 되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에대한 대답은 분명 부정형이다. 우리는 민족의 긍지를 지키기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고결한 투쟁도 기억하듯이 민족의 양심마저 지켜내지 못한 나약한 이름들도 더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작은 한부분이다. 어느 애국지사가<감옥살이를 오래 했다고해서 그것이 독립운동에 더 많이 공헌했다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라고 했을때 그 의미를 선뜻 깨닫기가 어렵다.
예를들어 이른바 한일합방이전에도 있었던 한국인 일본밀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고향을 등진 숱한 간도류민의 사연도 묻힌채 있다.
일본의 병합에 대해 어떤 계층 어떤 집단이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대해서도 소상히 더듬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빼앗긴 36년에 숱한 물음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런 물음들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극히 적다.
3월은 민중적 저항의 출발점이었다. 식민지 지배체제의 야만행위에 눈뜬 민중의 자각이 분출한 달이다. 이로부터 민중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 불길은 독립의 의지로 승화해 나갔다. 식민지 지배체제아래서 희망은 시들기는 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민족의 긍지에 바탕한 위대한 희망은 민중의 깊숙이에서 자라고 있었다.
역사는 연속이라고 한다. 변혁이 있었다해도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연속이 있다. 치옥의 과거를 청산하는 새 출발을 위해서는 과거는 정리되어야 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잊지 않고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있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우리의 상식선에서 수렴되고있는 일제36년사는 과연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정당하게 반영하는 것인가? 혹 가해자인 일본이 심어주고 간 식민사관의 미망에 사로잡혀 그들의 색안경을 아직도 눈에 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피해자로서의 감상주의때문에 이성이 아닌 감점의 체로만 사물을 걸러냄으로써 스스로 비과학적이고 피상적인 결론을 내리고있지는 않으가? 이같은 이유로해서 자칫 본말이 거꾸로 되거나 취사의 대상이 뒤바뀌어 바르게 가야할 역사를 오도하는 일은 없는가?
이유없는 편견이 작용하여 당시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포폄이 지나치게 획일화되거나 편파적인 것이 되어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이 연재물을 숱한 의문부호를 붙여 출발시키기로 했다. 물론 이들 의문에 대한 해답이 이 시리즈에서 도출되기를 기대할 수도 없고 또 기대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가능한 범
위안에서 제기하는 것으로 만족하려한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단지 알릴 것을 알린다는 저널리즘의 본령을 충실히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역시 신문이 갖는 특성과 한계로 인해 많은 사실들중의 적은 부분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미리 밝혀둔다. 우리는 단체와 사건과 사람들- 그들의 행적과 일화와 에피소드를 추적하려한다.
과거의 반추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려는데 있다. 미?유의 수난을 맞아 우리민족이 대처해온 모습을 재현시키고, 그속에 역사의 뻐저린 가르침으로 새겨야 하리라고 믿는다. 오늘의 고난을 극복하고 보다 밝은 새나라 창조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연재가 진행되다보면 부득이 친일인사와 단체의 친일행각도 언급될 것이다. 사실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겪고난후의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상황에서는 친일의 낙인을 찍히는것 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그것은 그동안, 유지해온 인격의 손상을 선고받는 것과 같다. 그때문에 우리는 자연인으로서의 친일인사들의 부정적 행적을 확대재생산하기 보다는 그들의 친일행동이 우리 민족에게 던져준 의미를 꼽씹어보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자한다.
『잃어버린 36년』.
이 연재물의 제목은 우리에게 매우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역사는 자유로운 민족의 선택이며 단절없는 발전의 이데올로기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잃어버린」 이라는 피동적이고 타울적인 형용어귀는 우리의 주체적 역사를 이야기하는데는 걸맞지 안는다고 생각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굳이 이 제목을 택한 것은 우리의 자각과 반성의 도를 높이고 아직도 우리 내면에 잠재해있을지 모르는 패배주의를 경고하자는데 뜻이 있음을 밝혀두고 싶다.【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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