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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너는 내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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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도 지나치면 멍청한 거지."

'너는 내 운명'에서 다방 여급인 은하(전도연)는 자신을 죽도록 쫓아다니는 농촌 총각 석중(황정민)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한국의 멜로물, 그 중에서도 신파 멜로는 바로 이 순정에 의한, 순정을 위한, 순정에 관한 장르다. 신파 멜로가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는 동력은 흔히 여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에서 온다. 이 운명의 정체는 사회적 관습이다. 물론 그 내용은 TV 오락물의 유행어처럼 '그때 그때 달라요'지만.

일부일처제의 신화와 가부장제의 잔재가 남아있던 1960, 70년대의 여주인공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68년)에서처럼 유부남을 사랑하거나 불륜을 저지른 '죄'로 아이를 빼앗기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계층의 문제도 드러났다. '맨발의 청춘'(64년)에서 동반자살을 꾀하는 사장의 딸과 건달의 순정에는 당시 막 산업사회로 돌입한 한국 사회의 신흥 자본주의 계급과 다른 계급 간의 위화감 문제가 녹아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75년)나 '나는 77번 아가씨'(78년) 같은 호스티스 멜로물에는 당시 도시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하층민의 소외된 삶이 신산스럽고 애수 어린 주인공의 운명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렇게 자식을 빼앗기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때로는 목숨까지 버리는 멜로 영화의 여성들에게 남성은 어떤 존재였을까. 동등하게 사랑을 나누는 동반자라기보다 한때는 사랑했어도 이야기의 비극성이 진전될수록 가해자로 변신하거나, 그저 방관자로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죽어서도 헌신하는' 남성상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여자는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마치 하나의 이념처럼 받드는 새로운 멜로의 공식이 등장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오직 뒤에 남을 아내의 앞날만 걱정하는 남편의 순애보를 그린 '편지'(97년)나 이후 '약속'(98년)'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년) 등이 그 예다. 모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즉 불변의 사랑을 모토로 여성 관객의 손수건과 호주머니를 동시에 울렸다.

이런 맥락에서 '너는 내 운명'을 보자. 우선 여주인공은 90년대 멜로처럼 전문직종이 아니라 과거 호스티스 멜로물의 계보를 잇는 다방 여급이다. 그러나 70, 80년대의 호스티스 멜로가 은근히 겨냥하고 있었던 '여주인공이 벗는다'는 문제, 즉 에로티시즘에 대한 강박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농촌에 불어닥치는 국제결혼 문제나 에이즈와 연관된 인권과 언론의 냉대 같은 사회적 반응들을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삶의 조건으로 가감 없이 짚는다. 다큐멘터리 PD 출신답게 우리 사회 곳곳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들인 박진표 감독의 노력이 전도연과 황정민의 눈물의 연기와 버무려졌다고 할까. 그러면서 남성의 순정에 초점을 맞추는 점은 90년대 후반 이후의 멜로와 궤를 같이한다.

만듦새에서는 이모저모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장착한 묵직한 최루탄은 시대를 넘나들며 관객을 울리는 신파 멜로야말로 혹 한국 영화의 운명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심영섭(영화평론가)

성근 짜임 꽉 찬 연기

'사랑'을 믿는 농촌 총각 석중은 스쿠터를 타고 커피 배달을 가던 은하에게 첫눈에 반한다. 석중의 순박하고도 진정 어린 애정공세에 반신반의하던 은하도 마음을 연다. 알콩달콩한 연애가 결실을 보아 행복을 만끽할 무렵, 복병처럼 숨어있던 은하의 과거가 덜미를 잡는다. 떠나간 은하를 잊지 못하던 석중은 충격적인 뉴스를 통해 비로소 은하의 소재를 알게 된다. 매매춘업소를 전전하던 은하가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다. 영화는 이모저모 이질적인 요소를 묘하게 버무린다. 영화 전반부는 웃음기가 진하고, 후반부는 정교한 만듦새보다는 눈물의 힘으로 밀어붙인다.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인데도, 배우들의 생동하는 연기가 입체감을 준다. 이런 사랑이 실제 있을까 싶기도 한데, 감독이 신문기사에서 본 에이즈 감염 여성의 사연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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