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29불시대」실보다는 득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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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직 확정은 안됐지만 OPEC(석유수출국기구)는 원유 공시가를 29달러선으로 내리는데 거의 합의했다.
이란 등 다소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유가인하는 필연적 추세이고 완전합의도 시간문제다.
29달러라는 새로운 유가체계가 이루어지기까지 세계경제는 지난 73년의 1차 오일쇼크 이후 실로 10년간의 진통을 겪었다.
유가를 너무 높이 올린 부작용으로 세계경제침체·국제 금융질서재편, 생에너지의 가속화 등이 나타났고 이것이 기름소비를 크게 줄여 산유국들이 기름값을 다시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것이다.
유가인하의 스타트는 영국이 끊었다.
즉 카르텔 체제를 지켜온 OPEC각국의 유가와는 달리 거의 다가 서방 석유 메이저들에게「시장가격」에 의해 팔려나가는 영국의 북해산 원유부터가 더이상 수요감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달 18일 배럴당 33.5달러에서 30.5달러로 인하했다.
이렇게되자 OPEC의 「카르텔가격도 이제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전처럼 세계원유생산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태라면 몰라도 세계 생산량(자유진영)의 불과 45%정도만을 뽑아 올리고있는 요즘 OPEC의 처지로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격이 되었다.
북해산 원유와 질이 비슷한 나이지리아부터 가격경쟁력을 되찾기위해 배럴당 35.5달러에서 30달러로 한꺼번에 5.5달러나 가격을 내려버리는 「단독행동」에 들어갔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OPEC유가가 34달러에서 29달러로 띨어지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OPEC가 취할 수 있는 「전체행동」의 폭은 사실 매우 좁았다.
0PEC의 기준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시가격으로 결정되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산 원유는 나이지리아산원유보다 질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에 최소한 배럴당 1.5∼3달러는 싸야 한다.
따라서 나이지리아원유가 30달러를 기준 삼는다면 새로운 OPEC 기준유가는 28.5∼27달러가 돼야한다는 추산이 나오지만 이럴 경우 영국은 북해산 원유가를 다시 더 내려버리겠다고 위협해 오던판이라 자칫하면 각국의 유가가 서로를 물고 내리는 「인하전쟁」의 위험이 커진다.
자연 0PEC의 새로운 기준유가는 29∼30달러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중에서도 3O달러 기존유가가 채택된다면 나이지리아는 다시 원유가를 배럴당 31.3달러로 되돌려야하고 대신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재정보조를 받아내면 되지만 양국은 그간의 막후협상에서 재정보조의 액수에 대해 도저히 합의를 볼수가 없었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손해를 감수한 채 나이지리아 원유가와 불과 1달러의차밖에 나지않는 29달러 기준유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하루 1천7백50만 배럴로 정해진 OPEC의 전체 생산 상한선안에서 각국이 얼마만큼씩의 생산쿼더를 배정 받느냐다.
수지악화로 압박을 받고 있는 OPEC회원국들로서는 산유량 쿼터가 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가장 불만이 많은 나라가 전비지출에 시달리고 있는 이란으로서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량을 더줄이고 자국의 생산쿼더는 하루 3백만 배럴까지 늘려달라고 유가합의를 거부한채 아직도 고집을 피우고 있다.
어쨌든 OPEC 기준유가가 배럴당 29달러로 5달러 떨어짐에 따라 국내유가는 약 13%의 인하요인이 생겼다.
여기에 이미 안고있는 0.8%의 인상요인을 감안하면 결국 국내유가에는 12.2%의 인하요인이 남게된다.
현재 정부는 인하요인의 전부를 국내유가에 반영치 않고 이중30∼50%만을 반영할 계획이므로 인하요인의 50%만을 반영한다면 전체 국내유가는 결국 평균 6.l%정도 내리게되며 이에따라 도매물가는 1.34%의 하락요인이 생긴다(도매물가 중 유가비중 22%).
또 유종간 가격조정에 있어 동자부는 인하요인의 대부분을 벙커C유쪽에 들릴 생각이므로 유가가 평균 6.1% 내리면 벙커C유는 최대 12.2%까지 내릴수도 있다.
만약 벙커C유가 12.2% 떨어진다면 전기요금도 따라서 5.7% 내릴수 있다(전기요금의 벙커C유연료비 비중은 47%).
반면 등유·경유·휘발유·LPG등은 이번 유가조정 때 별로 크게 내려가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유가가 5달러 떨어짐에 따라 한해 약 1억 8천만 배럴정도의 원유를 사다 쓰는 우리나라는 연문 약 9억달러의 원유도입비를 덜 써도 되게됐다.
그러나 중동건설수주 외차입금액이 줄어둘고 대중동 상품 수출액도 줄어듦으로써 입는 타격도 크다.
최근 KDI는 OPEC 기준유가가 4달러 하락할 경우 지난해 l백 14억달러에 달했던 중동건설 수주는 올해 7O억달러까지 줄어들고 해외건실외차입금액도 지난해 24억 5천만달러에서 23억2천만 달러로 줄어둘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실제 건설업계의 예측은 이보다 훨씬 더 비관적이다.
건설업계는 이번 5달러 기준 유가하락으로 중동건설수주는 지난해 1백억 달러의 절반밖에 안되는 약60억 달러로, 건실외화차입금액은 지난해의 24억5천만달러에서 올해 약 21억달러 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고있다.
더구나 해외건설 퇴조로 인한 실업·관련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등은 이같은 「수치」에 잡히지 않는 역오일 쇼크인 것이다.
또 유가하락→세계경기회복→교역량 증가→국내 수출증가로 이어질수 있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겠지만 중동건설퇴조와 같은 유가하락의 역기능은 당장 우리경제에 주름살을 지을것이다.
1차 오일쇼크때도 우리는 대응이 늦어 힘든 경제를 꾸려가야 했는데 10년뒤인 바로 지금이 역오일 쇼크를 무난히 넘길 온갖 지혜를 짜내야 할때인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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