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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 <31>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새해 맞이…시간의 블랙홀 건너는 비결이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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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이제 또 새해를 맞이했다. 해마다 반복하는 이 말처럼 시간의 주기성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없는 듯싶다. 그러나 주기적인 느낌은 인간이 설정한 책력(冊曆) 체계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사실 시간은 일회적으로 흘러가버린다. 고인들은 이 점을 잘 통찰했다. 가령 공자는 시냇가에서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逝者如斯夫, 不舍晝夜)”(『논어(論語)』 ‘자한(子罕)’)라며 시간의 흐름을 냇물에 빗대어 한탄했고(‘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한 것이라는 다른 해석도 있다), 이백은 역시 대시인답게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光陰者, 百代之過客)”(‘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고 그 속성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버린다는 생각은 인간의 삶이 짧고 부질없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장자는 “사람이 천지간에 살아가는 것이 백마가 좁은 틈을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일 뿐이다(人生天地間, 如白駒過隙, 忽然而已)”(『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라고 설파했고, 『삼국지』의 영웅 조조는 “인생이 그 얼마인가? 비유컨대 아침 이슬(人生幾何, 譬若朝露)”(‘단가행(短歌行)’)이라고 비감하게 노래했다.

 그러나 시간은 정말 빠르기만 한 것일까. 남조(南朝) 송(宋)의 유의경(劉義慶)은 다음과 같은 설화를 전한다. 한(漢) 나라 때의 유신(劉晨)과 완조(阮肇)는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다 두 명의 미인을 만나 즐겁게 반년을 살았는데 집 생각이 나서 돌아왔더니 7대손이 맞이하더라는 이야기다.(『유명록(幽明錄)』) 그러니까 산속의 반년이 속세의 200년쯤에 해당되는 셈이다. 이런 종류의, 이른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식의 이야기 유형은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다. 설화학에서는 이를 ‘립 밴 윙클(Rip Van Winkle)’형 스토리라고 부른다. 립 밴 윙클은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 Irving)의 소설 이름이자 그 주인공이다. 공처가인 립 밴 윙클이 산속에 들어갔다 술에 취해 깨어보니 엽총은 썩어있고 20년이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시간은 이처럼 차원에 따라, 혹은 처한 환경에 따라 그 속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예컨대 악전고투하고 있는 권투선수에게 1라운드는 한 시간 이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관전하는 사람에게는 3분이란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기실 인생이 짧다는 한탄은 우리의 과도한 욕망 때문이지 시간 그 자체의 길이와는 무관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길든 짧든, 한번 흘러가버리고 마는 시간의 파괴력은 변함이 없다. 그 어떤 단단한 것도 파괴하고 마는 시간의 위력은 가공하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그 극강한 시간의 파괴력에도 마멸되지 않는 혈육간의 사랑을 그려내 감동을 자아냈다.

 영리한 인간은 오래전부터 파괴적인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일회적인 시간을 주기적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날을 우주가 생겨났던 태초의 순간으로 상상하고 그 순간을 재현함으로써 우리는 해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세계 각 민족의 다양한 신년 의례와 민속은 여기서 기원한다. 다시 새해가 왔다. 얼룩진 과거는 흘려보내고 처음처럼 힘차게 삶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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