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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능성 구씨 - 집성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충남 당진군 송악면 가교리-. 국사봉언저리에 능성 구씨 2백여가구가 6백50여년 오순도순 살림을 꾸려온다. 능성 구씨가 이곳에 터잡은 것은 고려 충숙왕때. 시조의 4세손되는 구예(판전의사·면성부원군)가 이곳일대 토지를 하사받은 연유에서다. 국사봉이란 이름자체가 나라로부터 받은 땅을 표시한 것.
그는 죽은 뒤 이곳 나라에서 받은 산기슭에 묻혔고 그의 부인 아주 신씨는 남편의 묘소아래 암자를 엮고 남편의 명복을 빌며 여생을 보냈다. 어머니를 따라 후손들이 산아래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게된 것이다.
폭설도 쌓일새없이 녹는다는 양지바른 구예의 묘소는 인근에 소문난「명당」. 후손들은 가교리 구씨융성의 원원이라 여기며 전설적인 얘기를 전해온다. 구씨가 관직에 있을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됐다.
도중에 공금을 유용해 사형을 당하게된 한 청년을 만났는데 후덕한 그는 자신의 사재로 이를 판상, 청년을 구해주었다. 풍수의 대가였던 청년은 구명의 보답으로 묘소를 잡아주었다고 후손 구권회씨(67)는 전한다. 전설은 계속된다.
청년은 천·지·인형국의 3개소를 놓고 구예에게 택일하라고 했다. 천형국에 묘를 쓰면 9대정승을 내고, 지형국은 만대영화와 자손이 화목하게 살고, 인형국은 부귀를 누리나 자손들의 암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구예는 지형국을 택했다는 것이다. 구씨의「재산」과「화목」의 설명이다.
아닌게 아니라 산소는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지자처럼 생긴 산기슭의 지자 중앙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시조묘소와 국사봉의 풍수설은 이곳 구씨들에 신앙처림 여겨지고 있다.
마을을 연 할머니 신씨가 세운 암자는 신암사로 불려 전하며 능성 구씨 문중소유로 돼었다.
극락전안에는 인도에서 들여왔다는 아미타불 금동불상(금도금이 아님) 과 함께 마을을 연 구예·아주 신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6백여년 구씨들은 일대에 퍼져 당진군 송악면에만 2백여가구, 당진군 전체에는 8백여가구가 대성의 위세를 떨치고있다.
주업은 농업. 쌀농사로 가구당 소득이 연평균 3백여만원. 중류농촌이다. 그러나 선비집안의 엄격한 가풍과 일가화목의 전통은 지금껏 맥을 잇고있다.
구예의 23세손 구권회씨는『요즘 젊은이들은 농사짓기가 싫다고 고향을 떠나고 나같은 늙은이만 옛땅을 지키고 있다』며『멀지않아 이곳도 타성들이 몰려와 옛날같이 구씨 본거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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