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게 주인의 믿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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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점에서 필요한 책 두 권을 사들고 계산을 하기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전재산인 1만원권 한장이 행방불명이었다.
어머나,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왼쪽, 오른쪽주머니 속을 번갈아 넣어 보는 내 손바닥에 잡혀 나오는 건 며칠전에 사먹었던 땅콩 껍질뿐.
카운더 위에 얹었던 책을 도로 제자리에 갖다 얹어놓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상황을 눈치챈 서점 아줌마가 외상으로 줄터이니 다음에 시내 나오면 갖다 달라며 제자리에 갖다 놓았던 책 두 권을 포장해 주는 것이었다.
서점 아줌마의 친절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며칠뒤 외상값 갚으러 서점엘 다시 갔다.
친절하게도 필요한 책 있으면 또 외상으로 가져가라며 웃는 아줌마의 말에, 그러다가 영 떼어먹으면 어떡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옷장사 3년하다가 책장사 2년짼데 옷값 떼어먹는 사람은 있어도 책값 떼어먹는 사람은 없더란다.
『어머나, 그래요?』하고서 한권은 선 자리에서 속독으로 읽고 두 권은 다시 외상으로 사들고왔다.
그후부터 그 서점의 단골손님이 돼버렸는데,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무엇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나날이 불어나고 있는 내 외상 책값을 아줌는 이마 한번 좁히지 않고 믿어주고 있고, 빌어 와서 갖다주지 않은 책은 있어도 외상으로사온 책값은 고모가 화장품 외판원 아줌마한테 외상값 찔끔찔끔 갚듯이 나 또한 그렇게 꼬박꼬박 갚고 있는 것이다.
나를 믿어 준다는 것은 여간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서점 아줌마의 말처럼 굳이 옷손님, 책손님이라는 한계를 떠나 우리는 믿음을 저버릴수 있는 용기는 별반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믿음에 의혹이 생겼을 때 우리는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부산시부산진구동평동458의1>
최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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