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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 예정지서 중도 포기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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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장기면 당암리의 한 주민이 잡초가 우거진 논을 가리키고 있다.

20일 오전 행정도시 건설 예정지인 충남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 들녘. 올해 이곳에서는 태풍이나 큰 수해가 없었기 때문인 듯, 대부분의 논에서 벼가 잘 영글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쪽 논(1800여평)에서는 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이 무성한 잡초가 눈에 띄었다. 논두렁과 논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 논은 대전에 사는 주인이 지난해까지 주민 성모(45)씨에게 빌려줬다가 올해는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으나 영농기술이 없어 결국 포기한 곳이다.

성씨는 "주인이 일손을 덜기 위해 직파재배(볍씨를 직접 논에 뿌리는 재배법)를 했다가 실패해 다시 모를 심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이제 나타나지도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3월 행정도시건설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도시 건설 예정지인 연기.공주 지역에 농지를 갖고 있는 상당수 외지인이 그 동안 빌려줬던 땅을 회수, 올해부터는 집과 농지를 오가며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 땅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 2년치 농산물 매출액을 '영농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농기술 부족과 관리 소홀로 농사가 잘 되지 않자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당암리가 고향인 이모씨(46.회사원.대전 서구 탄방동)도 올해부터 가족과 함께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가 자신의 논(3000평)에서 농사를 지어 오다 피 등 잡풀이 너무 많이 자라 전체 벼의 30%이상이 말라 죽자 최근 포기했다.

대전에 사는 임모(46.사업)씨도 올 봄부터 주말마다 고향인 연기군 남면 종촌리에 내려와 벼농사를 짓다가 결국 실패했다.

잡풀이 무성한 논은 장기면 당암리 외에 연기군 남면 양화.고정리 등 행정도시 예정지 내 다른 지역에서도 종종 눈에 띈다.

이처럼 외지인들이 농사를 포기하거나 농작물 관리를 소홀히 하는 데 대해 현지 주민들의 시선은 아주 곱지 않다. 잡풀이 인근의 다른 논까지 번지는 것을 물론 병충해가 확산돼 엉뚱하게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황윤석씨(59.연기군 남면 진의리)는 "자기 땅에 농사를 짓겠다는 데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지만 그래도 농사는 제대로 지어야지 … "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한편 충남도 등에 따르면 행정도시 예정지 전체 농지의 55%가량은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다.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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