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카드, 남한뿐 아니라 미·중 향해서도 던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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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를 두고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을 작게 봤으나 필요성은 대체로 인정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남북 정상이 만나면 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교류 협력이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통 큰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①제안 배경=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인 이화여대 박인휘(국제관계학) 교수는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으로 중국과 러시아에서 큰 행사를 계획하고 있고, 한·일은 수교 50년을 맞아 동북아에서 외교적으로 큰 게임이 돌아가게 된다”며 “정상회담 카드는 남한만 보고 던진 게 아니라 중국·미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삼각게임을 즐겼는데, 이런 시도가 김정은 식의 삼각게임이 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북한학) 교수도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이 결정된 직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한 전례가 있다”며 “북·러 정상회담을 논하고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띄우는 건 중국에 대한 압박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인제대 진희관(통일학) 교수는 “북한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다른 어떤 행사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며 “통일준비위원회가 장관급 회담을 제안하자 정상회담 카드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②진의=제안의 진정성을 가늠하기 위해선 김 제1위원장이 내건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연세대 문정인(정치학) 교수는 “군사훈련 중지와 존엄을 존중해 달라는 조건을 달았는데, 전제조건을 풀어야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박정진 교수도 “군사연습 중단, 미국의 정책 전환, 체제 인정 등 원론적 조건들을 테이블에 놓고 의논할 수 있어야 고위급 접촉, 최고위급 회담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선임연구위원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을 먼저 만들라는 것이 김정은 신년사의 핵심”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지난해보다 긴장 국면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③가능성= 박인휘 교수는 “김정은이 첫 번째 정상외교의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기엔 내부 리스크가 크다”며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교수는 “정상회담을 하려면 막후 접촉을 통해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공개된 자리에서만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서로 체면이라는 게 있어 가능성이 희박해진다”고 했다.

 다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만큼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상반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하면서 고위급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의제를 미리 검토하자고 제안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과) 교수도 “올해는 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로, 북한 핵 문제의 진전 여부와 연계해 (정상회담에 대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권호·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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