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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20%가 남북관계 … 자신감 넘친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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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1일 0시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 왼쪽부터 김춘삼 인민군 상장, 이영길 총참모장,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 제1위원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박영식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조경철 보위사령관.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육성 신년사는 대담했다.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제안하는 모습은 2013년 처음 카메라 앞에서 신년사를 할 때의 불안한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김 제1위원장은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목소리를 따라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발음도 부정확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뚜렷한 발음에 억양을 넣어가며 자신감 있게 원고를 읽었다.

◆남북관계=이번 신년사는 과거 신년사에 비해 대남 메시지에 특히 공을 들였다. 제목이자 한 해 정책목표인 구호도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였다. ‘통일’이란 단어를 18번 사용했고, 분량도 전체 1만504자 중 2007자로 5분의 1을 남북 문제에 할애했다. 대남제안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다음은 남북관계에 관한 발언 요지다.

 “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해 끊어진 민족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 북과 남은 더 이상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야 한다.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화,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다만 파격 제안엔 전제도 있었다. 김정은은 “남조선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대규모 전쟁연습 속에서 신의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북남관계가 전진할 수 없다.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막힌 책임도 남쪽에 돌렸다. “지난해 우리는 북남관계 개선과 조국통일을 위한 중대 제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하여 성의 있는 노력을 다했지만, 내외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으로 응당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 북남관계는 도리어 악화의 길로 줄달음쳤다.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미 관계=김정은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로 압박해오는 데 대한 불만도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의 자위적인 핵 억제력을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기도가 실현될 수 없게 되자 비열한 인권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무분별한 침략책동에 매달리지 말고 대담하게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 개발 위협도 담았다. 김정은은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선군(先軍)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핵 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억척같이 다지고 국권을 튼튼히 지켜온 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곤 “우리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할 것”이라고 했다.

 ◆내정·경제=북한 내부를 향한 메시지도 다소 변화가 있었다. 북한은 최근 몇 년간 신년사 맨 앞에 경제정책을 밝혔지만 올해는 ‘정치사상강국’ 건설을 앞세웠다. 김정은은 “당의 위력한 무기인 사상을 틀어쥐고 사상사업을 공세적으로 벌이자”고 강조했다. 경제분야에선 농·축·수산을 3대 축으로 삼아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관광지 및 경제개발 지역에 대한 강조도 눈에 띈다. 김정은은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들을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해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주요 대남 요구사항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김정은은 2012년엔 신문 공동사설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했다가 2013년부터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방송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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