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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벤처의 씨앗을 뿌릴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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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남민우
벤처기업협회 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

돌아보면 새 정부의 벤처 정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동안 벤처업계가 건의해 온 창업-성장-성숙-재도전의 생애주기에 걸친 정책 지원책이 발표됐고, 그 가운데 일부는 조기시행 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제 제도적 인프라는 완비되었다”고 말할 정도다.

  내용을 살펴보면, 2013년 5.15 대책에서는 엔젤투자 소득공제, 크라우드 펀딩 도입, 인수합병(M&A) 세제지원, 재투자 촉진 등 그간 벤처업계가 주장해 온 큼직큼직한 안건들이 대부분 반영됐다. 2014년엔 벤처기업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책 지원책이 발표됐다. 연초에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는 창조경제혁신센터 구축, 기술은행 설립 및 각종 재정지원, 청년창업·엔젤투자펀드 확충과 한국형 요즈마펀드 조성 등이 포함됐다.

 그렇다면 벤처업계가 체감하는 현실도 이와 같을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현장의 온도차는 상당히 크다. 일례로 창조경제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돼왔던 연대보증의 경우 그간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정부에서 수 차례 개선책이 발표됐지만 아직까지 국책금융기관 및 보증기관 등에서만 일부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상기업이 매우 제한적이며, 추가적인 요건 제약으로 인해 수혜자는 창업 기업의 5% 미만에 불과하다.

 정책의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핀테크로 대표되는 창조금융 분야도 여전히 각종 금융 규제에 발목이 묶여 세계적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벤처 지원정책이 창업 활성화와 연구개발(R&D) 같은 공급측면에만 집중됐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부가 지금까지 창업 마중물 붓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들 기업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판로 지원 및 공공구매 혁신과 같은 수요측면 정책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다. 특히 공공조달시장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 이 시장은 신설 기업이 초기 자금난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높여 국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중소기업 육성의 텃밭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더불어 벤처기업들이 협소한 내수시장을 극복하고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화 지원 정책이 꼭 필요하다. 매출 10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벤처천억기업’들을 보면 전체 매출의 25.9%를 해외에서 달성하고 있어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데, 중소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규모나 전문성 측면에서 사전조사 및 마케팅과 현지 대응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해외 진출에서 사업 철수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이 겪는 폭넓은 애로사항 실태를 조사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의 입장이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 과연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가에 대해 제대로 점검을 해야 할 시기다.

 우리가 이처럼 벤처 생태계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는 일자리도, 경제 성장도, 새로운 성장 동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경제를 지탱해왔던 전통적인 산업군이 중국의 추격 속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지금 혁신과 창조의 도전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희망이 없다. 우리에게도 소위 벤처 붐이라 불렸던 좋은 생태계가 90년대 후반 조성됐었지만,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를 계기로 유지에 실패했던 안타까운 과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20년 전 벤처 태동기에 황무지를 개척해 뿌린 벤처의 씨앗은 2만9000여 개 벤처기업으로 성장해 우리 경제를 견인해 왔다. 지난해 벤처기업의 총 매출은 200조원에 육박해 국내총생산 대비 14%에 달하며, 고용은 일반 중소기업보다 6.3배나 높다. 올해 7월에 발표된 매출 천억 이상 벤처기업이 454개사, 1조원 이상이 8개사에 달한다.

 이제 향후 20년을 위해 다시 벤처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다. 우리는 벤처기업 3만 개 돌파의 기점, 그리고 벤처생태계가 태동한지 20주년이 되는 2015년를 맞이했다. 보다 전향적인 정책과 강력한 이행을 통해 한국 경제에 희망과 우려가 교차하는 2015년이 진정한 의미의 제 2의 벤처 르네상스가 도래하는 벤처역사 20년의 새로운 기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 회장·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