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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유권자들의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소핵 전략의 운명을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서독총선거는 기민당의 「헬무트·클」수상과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끝났다.
개표 직전까지도 기민당의 과반수득표가 불안하고, 중도우파인 자민당의 의석 상실이 확실하고, 반핵정당인 녹색당의 의회진출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가 싶었는뎨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기민당이 놀랍게도 과반수 득표를 무난히 달성했다.
자민당도 에상을 뒤엎고 의회에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
녹색당이 5.6% 득표로 27개의 의석을 차지하게 된것이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마이너스 요소이다.
이번 총선거의 최대, 유일한 패자는 득표율 38.2%에 1백 93석을 차지하는뎨 그친 사민당이다.
80년 총선거때 42.9%를 차지한 것에 비해서도 분명한 산술적 후퇴지만 그들의 핵정책과 경제정책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민당의 진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것이라고 하겠다.
기민당파 연정을 구성하고 있던 자민당은 80년의 10.6% 득표에 훨씬 못미치는 6.9% 득표로 끝났지만 의회진출에 필요한 5% 득표선을 넘어선 것을 자위로 삼을 만하다.
기민당은 의회에서 과반수인 2백 48석에 5석이 모자라는 2백44석을 확보했지만 단독 내각이나, 유리한 입장에서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두갈래의 선택을 할수있게 되었다.
원래 서독 총선거가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이번 선거가 미국의 최신형 미사일의 서독배치 계획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는 79년 말 핵무기 배치에 관한 「이중결의」라는 것을 채택했다.
그 결의는 미소간의 유럽 중거리핵 협상이 성공하지 못하면 나토는 83년말부터 펴싱Ⅱ와 크루즈미사일의 나토배치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서구에 배치될 1백 8기의 퍼싱Ⅱ 모두와 크루즈 미사일 4백 64기 중 96기가 서독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독 국민들이 반대할 경우 나토 배치 자체가 흔들리고, 그렇게 되면 핵전력에서 소련의 우위에 종지부를 찍고 핵의 균형을 실현하려는 미국과 나토의 전략은 큰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문제에 관해서 기민당은 최신형 미사일 배채지지, 사민당은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인정은 하되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입장이었다.
소련이 사민당을, 미국·영국·프랑스가 기민당을 훈수한것도 이런 입장 때문이었다.
기민당과 사민당이 모두 과반수 득표에 실패하고 자민당의 의회복귀가 봉쇄된 가운데 녹색당의 의회진출이 실현되었다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전후 유럽의 우등생으로 꼽히던 서독은 가까운 장래에는 벗어나지 못할 심각한 불안정의 늪으로 빠져들게 될뻔했다.
작년 10월, 자민당이 사민당과의 연정을 이탈하여 기민당과 제휴한데서 뜻하지 않게 집권하게된 「콜」수상은 조기 총선거라는 위험한 도박에서 승리한 것이다.
「콜」내각은 전후 최대의 실업률(10.6%)과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약점을 안고 선거를 치르면서 그런「서독병」의 책임을 사민당에 돌리는데 성공한것 같다.
국내문제의 최대의 관심사였던 경기화복을 위한 처방에서 사민당이 재정투자에 의한 경기자극을 주장한데 대해서 기민당은 금년도 제로 성장이 불가피 하지만 기업 감세, 주택건설보조, 중소기업의 투자보조, 사회보장비의 삭감에 의한 재정적자의 축소로 올후반부터는 경기가 상승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했다.
이번 총선거 결과로 서독이 안정의 시대에서 혼미와 불안정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은 일만 방지 되었지만 녹색당이라는 체제 부정파가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것을 보면 혼미의 시대가 오는것이 연기되었을 뿐이지, 아주 방지된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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