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포기 합의] 북·미 정상화 열쇠는 '테러국' 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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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자회담 이레째인 19일 낮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각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 회의가 열리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6자회담이 타결됨에 따라 중단됐던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평양-도쿄 관계 정상화 속도가 평양-워싱턴 정상화 속도보다 빠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 북.미 관계=양국 관계 개선이 더딜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법적 장애물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미국이 6자회담 테이블에 나온 것은 이라크 사태라는 정치적 늪에 빠진 데다 한국.중국의 외교적 압력에 몰려 할 수 없이 나온 측면이 강하다. 국방부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워싱턴 분위기를 감안할 때 지금 당장 미 행정부가 '북.미 관계 정상화'카드를 끄집어 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명치 못한 일이다. 법적 장애물도 많다. 북한은 이미 미 행정부의 적성국 및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라 수백 건의 규제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인권 및 위조지폐, 마약, 대량살상무기 문제 등으로 더 많은 장애물이 생겨났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북.미 관계 개선은 민간인 교류 확대→중유 제공→테러 지원국 해제→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진전될 공산이 크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미 관계 정상화는 평양이 간절히 원하지만 워싱턴은 서두를 게 없는 이슈"라며 "북한은 테러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야 하고 미국에 대한 비난도 줄여야 하는 등 정상화 논의 전에 거쳐야 할 관문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평양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1968년 나포한 '푸에블로호'를 미국으로 반환하는 등 정치적 제스처를 취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앞서 북한 당국은 평양을 방문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푸에블로호를 반환할 의사가 있다'고 수차례 미국 측의 의중을 떠본 바 있다. 또 북한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미국에 '고위급 인사를 평양에 보내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북.일 관계=북.일 국교 정상화 협상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19일 6자회담 타결 후 "북한의 결단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계속해서 건설적으로 대화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 정부는 북한이 13일부터 열린 이번 6자회담에서 18일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양국 수석대표 간 회담에 응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일본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었다. 일 외무성 관계자는 "총선에서 자민당의 압승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지도력이 한층 강화되자 북한은 그의 재임 중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도 "고이즈미 총리는 북.일 국교 정상화 문제가 공동성명에 포함됨으로써 대북(對北) 국교 정상화를 추진할 명분을 얻었다"며 "북한이 납치문제에 얼마나 성의있게 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인 내년 9월 이전에 수교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대북 경제제재 논의는 이제 일본 정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총선 후 '6자회담 진행상황을 봐가면서 상호 성의를 갖고 국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던 만큼 양국 간 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도쿄=강찬호.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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