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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통해 에이즈 2명 감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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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례가 국내에서 또 발생했다. 1995년 이후 8년 만이다.

이에 따라 국내 혈액관리 및 공급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립보건원은 지난해 5월 수술을 하면서 20대 후반 A씨의 혈액을 수혈받은 B(10대)양이 같은해 12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12일 밝혔다.

◆에이즈 감염 경로=99년부터 동성연애를 해온 A씨는 지난해 4월 29일 예비군훈련장에서 헌혈을 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은 헌혈 당시 A씨의 혈액에 대해 에이즈 항원.항체 효소면역검사를 했으나 모두 음성으로 나타났다.

결국 A씨의 혈액은 정상으로 분류돼 B양 외에 70대 남성 C씨와 90대 남성 D씨에게도 공급됐다. 이 가운데 D씨는 지병으로 이미 숨졌고 C씨의 경우 검사결과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B양은 수혈 후 감염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지난해 12월 뇌수술 후유증으로 재입원, 검사받는 과정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왔다.

보건원은 B양에게 혈액을 제공한 79명을 추적해 검사한 결과 A씨만 에이즈 양성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음성이었다고 밝혔다.

보건원은 또 A씨가 고교 때와 군복무시절에도 헌혈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동성연애를 하기 전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은 국내에선 95년까지 10건밖에 없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2001년까지 미국 9천3백52명, 영국 3백47명, 일본에서 1백10명이 발생했을 정도로 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2백49만여명이 헌혈했고 이중 2천여명이 검사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와 폐기됐다.

◆혈액관리에 '구멍'=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은 현재 A씨에게 실시했던 항원.항체 효소면역 검사법으로 에이즈 감염여부를 판별하고 있다.

문제는 이 검사가 에이즈 감염 초기 3~4주 동안은 감염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A씨도 헌혈 당시 감염초기여서 이 검사에서 걸러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미국.일본.영국.독일 등에선 에이즈 감염여부를 알 수 없는 기간을 항원.항체검사보다 1주일 정도 단축한 핵산 증폭검사법(NAT)을 쓰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도 이 검사법 도입 등 혈액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예산으로 지난해 1백28억원을 신청했으나 국회에서 삭감됐다.

헌혈 전 동성연애 경험 등을 묻지만 본인이 거짓말을 할 경우 전혀 거를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A씨도 헌혈할 당시 동성애 경험을 묻는 설문에 '없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처럼 헌혈전 문진(問診)에서 거짓말을 해 남에게 에이즈를 전염시키더라도 형사처벌을 할 근거가 없다.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피해자에 대한 보상액이 최고 3천만원밖에 안되는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물질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물론 위자료 수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해 자가(自家) 수혈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가수혈이란 자신의 피를 수술 전 뽑아 놓았다가 사용하거나 가족들의 피를 수혈받는 것이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권관우 사무총장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헌혈 후 다시 문진을 실시해 의심되는 피는 폐기해야 한다"며 "동성연애자 등을 대상으로 보건소에서 에이즈 감염여부를 알아보는 익명검사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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