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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외제|김영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솔직이 말해 여자 치고 외제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반짝거리는 외제 라벨이 주는 산뜻함과 제품의 견고성에 매력을 느껴, 본의든 아니든 간에 외제 물건을 한두 번 쫌은 접해 보았을 것 같아서 얘긴데, 땅만 파먹던 국민이 공업국으로 발돋움하려니 기술이나 시설이나 모든 면이 취약한 데서 생산된 물건들이니, 마음에 안 들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외면한 채 가전제품 하면 회로가 맞는다 해서 미제나 일제만을 찾는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
또 여자용 사치품은 프랑스제나 이탈리아제를 쳐주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루이뷔통이라는 돼지같이 생긴 가방이 파리에서는 10만원인데 보세집에 가면 모양이 똑같은 것을 5천원이면 깎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나보고 진짜와 보세 중 어느 걸 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보세를 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10만원, 아니 시중에서 세금까지 붙여 20만원에 파는 프랑스백을 샀다고 말하면, 부러워하기는커녕 미쳤다고 야단칠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치품은 그렇다 치고 의류제품은 양상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기회가 있었다. 미국으로 이주하신 친척 한 분이 얼마 전에 오셨는데, 친척들에게 주실 물건을 그곳에서 사 갖고 오신 모양이었다.
조카뻘인 나에게 주신 선물인 즉, 여름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나일론 제품인데다 바느질도 엉성하고 그냥 줘도 못 입을 이상한 빨간색 이었고, 스웨터 한 벌은 애들 입히기에도 괴로운 요란한 줄무늬의 아크릴 제품이었다.
받아 놓고도 외제에 대한 나의 잘못된 기대뿐 아니라 『아하, 여자들이 외제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시절은 끝나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제도 외제 나름이지만 국산 마다하고 무조건 외제만 찾다보면 이런 조악하고 싸구려 제품이 걸리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에 외화를 썼다면 억울하고 분해서 밤에 잠이 오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취약한 국산품에 애정있는 격려를 보내는 것이 어떨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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