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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자리비운 식당 음식, 열에 아홉은 엉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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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먹는 일이 직업인 김순경씨가 지인들에게 노래부르듯 하는 말이 있다. “음식을 잘 먹으면 건강해지고 성공은 덤으로 얻어진다.” 요즘 들어 여기에 한마디가 더 붙었다. “100세 장수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순경(74)씨는 하루에 다섯 끼쯤 먹는다. 직업 덕이다. 30년 음식 칼럼니스트로 살아온 그에게 먹는 건 일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길 따라 차를 달리며 맛 찾아 방방곡곡을 누벼온 그의 삶은 ‘길과 맛’이란 그의 1인 출판사 이름에 응축돼 있다. 1세대 음식 평론가로서 그의 소명은 ‘전 국민이 건강하게 100세까지’란 구호를 실현하는 것이다. 최근 펴낸 『찾아가서 먹는 점심집』은 이를 위한 가이드북이다.

 “하루 점심 한 끼는 아무렇게나 때우고 말 단순한 일이 아니죠. 삶의 원동력을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끼마다 누적되는 식사의 결과가 인생을 바꾸는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 서게 만들 수 있어요.”

 ‘그린 푸드’라 이름 지은 좋은 밥을 만드는 음식점 280집을 소개한 이 책은 그가 10년 이상 지켜보며 입도장,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전통의 맛집 안내서다. 그와 평생을 교유해온 할아버지·할머니 세대 주인장들이 타계하고 난 뒤 2, 3세대에 대물림을 했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가족들 먹을거리처럼 밥을 차려내는 집만 선별했다.

 “음식점에 들어서는 순간, 그 집 주인장 태도부터 살피죠. 오만불손하거나 부모 유산에 무임승차해 고객 머리 숫자만 헤아리는 아들 손자들은 꾸짖어줄 때도 있어요. 주인의 마음이 조리과정과 손님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곳은 아무리 수십 년 된 곳이라도 다 솎아냈어요.”

 그가 음식점에 들어가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대목이 주인이 자리를 지키느냐다. 주인이 없는 집 음식은 열에 아홉은 엉터리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 다음엔 주방장 손을 본다. 굵고 두툼하고 따듯하고 부드러운 손을 가진 이면 음식 솜씨는 볼 것도 없단다.

 그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이다. “직장을 잃고 할 일이 없어 먹고 놀러다니다가 그게 직업이 됐다”며 시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을 내려줬다고 자평했다. 그간 펴낸 음식 관련 책이 10권을 넘어서고, 한식 관련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www.hansiktour.co.kr)를 운영하며 쌓은 정보가 큰 곳간을 이룬 요즘, 그는 인생의 수확물을 널리 나눌 계획을 세웠다. 자신의 자료를 필요로 하는 곳에 넉넉하게 나누어주기로 한 것이다. 내년 1월 1일 출범하는 중앙일보 홈페이지 ‘여행·레저’에서도 그의 다양한 맛집 얘기를 읽을 수 있다.

 “앞으로 5년 동안은 열심히 퍼줄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요? 먹고 놀러다니는 걸 더 멋있게 할 작정입니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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