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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비정규직 대책은 노동시장 개혁의 출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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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지난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장그래 양산법’, 재계는 ‘장그래 우대법’이라며 맞서는 형국이다. 같은 장그래를 말하는데, 가리키는 지점은 극과 극이다.

 정부안은 35세 이상 기간제·파견 근로자가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게 골자다. 1년 이상 일해야 받던 퇴직금을 3개월만 일하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간제 기한을 4년으로 연장하는 데 대해 재계는 대체로 찬성, 노동계는 반대다.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역효과가 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재계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거나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따른 기업부담 완화 대책이 없다며 불만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뿌리는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있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32.4%(608만 명)나 되는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4%에 불과하다. 이런 이중구조를 깨는 데 재계는 정규직 과(過)보호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윗돌 빼 아랫돌 막기’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주장해 노사가 평행선을 달린 지 수년째다. 역대 정권이 비정규직 보호 정책을 펴왔지만 되레 비정규직은 계속 늘고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도 커지는 ‘노동시장의 역설’이 반복됐다.

 정부안은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다. 내년 3월까지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 한국노총이 반발하면 3월 내 타결이 불투명하다. 설사 노사정위를 통과한들 시행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참여도 거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주 즉각 총파업을 공약한 한상균 전 쌍용자동차 지부장을 새 위원장으로 뽑았다. 판 자체가 깨질 수 있다.

 비정규직 대책은 노동시장 개혁의 출발점이다. 비정규직 문제 말고도 정년 60세 연장, 통상임금 등 더 인화성 강한 고용·노동 현안이 널려 있다.

이래선 노동 개혁은커녕 비정규직 보호 과제 하나도 해결하기 어렵다.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은 없다. 노동계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재계는 방어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지금은 투쟁이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