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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따찌」는 함정에 빠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82년 6월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본 히따찌(일립)전자회사의 실리콘 밸리 산업 스파이사건은 사실 히따찌의 국제경쟁사인 미국의 IBM사와 미 연방수사국(FBI)의 합동함정수사에 히따찌 직원들이 속아넘어감으로써 확대된 일종의 대기업간 산업전쟁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호 포천지가 이 사건의 경위를 심층취재·보도함으로써 그 진상이 밝혀졌다.
IBM사에 고용돼 있던 「레이먼드·카데트」라는 한 컴퓨터과학자는 80년 11월 사직하면서 IBM사의 신형 컴퓨터인 「308X」호의 설계에 관한 극비문서 27건 중 10건을 복사해 나갔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이 문서를 히따찌사의 실리콘밸리주재원에게 제공했다.
이 문서의 진가를 파악한 동경의 히따찌사의 중역들은 이 문서의 나머지 17건을 빼내기 위해 전부터 거래가 있던 실리콘 밸리의 산업정보업체 PALYNG회사에 접근했다.
산업정보업체 PALYN회사의 사장 「팔레이」는 히따찌에 사건이 확대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고하는 대신 IBM사에 히따찌사가 이 기밀정보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밀고했다. 히따찌사에는 물론 이 사실을 숨기고 계속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는체 했다.
IBM사는 FBI를 불러들여 그들로 하여금 IBM사 연구원으로 위장시켜 히따찌사를 함정에 빠뜨리는 작전을 시작했다.
이들 FBI요원들은 히따찌사에 접근, 자기들이 IBM기밀정보를 빼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히따찌 직원과 자세한 계획을 논의했다. 이때부터 이들의 음모는 숨겨진 무비카메라에 촬영되었고, 음성도 녹음되었다.
그와 같은 함정수사에서 어떤 녹음이 미국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려면 범법자에게 그들의 행위가 범법행위라는 사실을 위장한 FBI요원이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광경이 동시에 녹화되어야 한다는 법원의 지침이 있다. 이 지침에 따라 「개러트슨」이라는 FBI요원은 숨겨진 카메라 앞에서 히따찌 직원에게 『IBM 정보는 불법적으로 취득할 수밖에 없으며 잡히면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 전혀 모르고 오히려 『사고가 나면 히따찌사로서는 큰일이다』며 자기들의 행동이 불법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자술을 비밀녹음기에 담아주었다.
한번은 FBI요원이 히따찌 직원을 IBM의 최신 컴퓨터 견본이 든 비밀창고에 안내했는데 여기에서 히따찌 직원은 너무 감격해서 그 신형 컴퓨터를 얼싸안고 동행한 위장 FBI요원에게 기념촬영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진이야말로 히따찌 직원의 스파이 사건 개입혐의를움직일 수 없게 확인해 주는 증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해서 FBI요원들은 35시간 길이의 비디오 테이프와 65시간 길이의 녹음테이프를 마련했다. 그 결과 히따찌사는 미국 검찰에서 유죄를 자인하는 대기업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창피를 당했으며 일본 기술진의 낙후성을 극적으로 전세계에 드러내 보여 주는 자백을 한 셈이다.【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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