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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아닌 광주라도 돈을 냈을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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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식 부산시장이 네티즌들과 '번개모임'에서 마신 외상술값을 대신 내 화제가 된 오복섭씨.

"부산이 아닌 광주에서 이런 일이 생겼어도 당연히 돈을 냈을 것입니다."

허남식 부산시장과 네티즌들이 '번개모임'에서 마신 외상술값을 대신 낸 '흑기사' 오복섭(44)씨를 1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한민국 H. I. D 청년동지회'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모임의 단장을 맡고 있는 오씨는 "나는 부산시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며 "청년들에게 맥주 한 잔 사는 기분으로 돈을 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부산시장과는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친가.처가.외가 모두 부산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부산시장에게 신세질 일도 없는 사람이지만, 어른이 사주는 맥주 한 잔 먹었다가 부담으로 상처받을 청년들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순수한 돈임을 거듭 강조했다.

오씨는 대납 사실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혼자 비밀로 하려했더니, 오히려 이런저런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같아 공개하게됐다"면서 "순수한 행동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시 선관위 측은 "최종 결론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오씨의 행동이 공직선거법(제3자의 기부행위제한) 위반 혐의가 짙다"며 오씨와 허 시장에 대한 조사를 계속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오씨와 일문일답.

- 돈을 대신 내게 된 이유는.

"8일 신문기사를 보고 젊은이들이 외상술값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엔 그저 흥미로운 기사라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부산시민에게는 난감한 문제인 것 같더라. 나쁜 의도를 가진 자리도 아니고, 청년들과 맥주 한 잔 한 것인데…. 좋은 기분으로 맥주를 마셨던 청년들까지 정치적인 이해때문에 상처받을 것 같아 나서게 됐다."

- 부산시장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많은데.

"부산과는 연고도 없고, 인연도 없다. 친가.외가.처가 모두 강원도 토박이 출신이고 나는 춘천에서 태어났다. 그런만큼 부산시장에게 신세질 일도 없다. 서울에서 치러지는 선거도 신경 안 쓰는 판에 부산시장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나. 같은 일이 광주에서 있었더라도 금전사정 등이 허락한다면 당연히 돈을 보냈을 것이다."

- 해당 술집은 어떻게 알아냈는가.

"사실확인을 위해 우선 부산시청에 전화를 했다. 시에 직접 돈을 보내겠다고하니 이를 사양하더라. 부산시청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사항들을 선관위에 물어보라고 해서, 선관위에 전화를 해 업소명을 받았다."

- 업소 주인은 뭐라고 하던가.

"'번개 한 집 맞느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하더라. 돈을 보내겠다고 하니 계좌번호를 순순히 불렀다. 돈 주는 사람이 누구냐고 특별히 묻지는 않더라. 돈 준다는데, 싫다는 사람 있겠나.(웃음) 주인에게 일반 생맥주집인지 직접 물어봤다. 만약 룸살롱 같은 곳이었다면, 단돈 1만 원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

- 해당 선관위에 대납 사실을 먼저 알렸나.

"8일 정오쯤 계좌이체를 하고 부산선관위에 전화를 해 이름과 주소 등 신분을 밝혔다. 혹 법적 문제라도 생기면 연락해야 할 것 아닌가.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겠다."

- 204만여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사무실 운영도 어려운 형편이라 들었다.

"물론 큰 돈이다. 우리 단체 사무실 임대료도 제때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도 맞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우리 회원들은 당장 돈이 없어도 소년소녀가장돕기나 무의탁 노인 돕기 등 봉사를 한다. 살아온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는가."

- 돈을 대납하고 나서 부산시청에서 연락을 받은 적이 있나.

"일절 연락이 오질 않았다. 연락을 하고 싶더라도 할 수나 있겠나. 궁금해도 못할 것이다.(웃음)"

- 처음에는 신원을 공개하지 않다가 갑자기 밝힌 이유는.

"돈을 보내고 보니, '구린내가 난다''반드시 잡아 처벌하라'는 등의 죄인취급하는 것 같은 의견이 싫었다. 좋은 일하는 셈치고 한 것인데, 역효과가 나니 불쾌하지 않겠나. 입 다물고 있으면 정말 음모가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 공개하게됐다."

-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송금한 것을 놓고 비난의견이 있는데.

"소속 단체인 '대한민국 애국청년 동지회' 명의 통장에서 송금을 하다보니, 보내는 사람 이름이 '대한민국'이 됐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호를 사사로이 사용한다'는 비난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남북축구대회때 '대한민국'을 외치지 못하도록 한 정부방침에는 한마디도 못하던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는 것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떳떳하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 그럼 공금을 사용한 것 아닌가.

"공금.사비의 구분이 없다. 사용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내가 주관한다. 우리 단체의 경우 감사의무 단체나 법인이 아닌 임의단체라서 그렇다."

- 선관위에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는데.

"기자회견장에 이미 서울지역 선관위 직원 2명이 입회를 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부산시장과의 관계.동기.배경.돈의 출처 등을 묻더라. 기자회견 이전에도 수 차례 부산시 선관위로부터 대납 관련 사항들을 묻는 전화를 받았다. 떳떳하게 조사받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겠다."

- 신원공개 이후 주변 반응은.

"직접 전화해서 욕하는 사람은 없더라. 인터넷 반응도 대게는 '남자답다'고 칭찬하는 것 같지만, 일부는 아직도 '냄새가 난다'고 욕을 하더라. 주변 분들은 '술값 달아놓을 테니 대신 갚아달라'고 농담을 하신다."

- 소속 단체 홍보를 위한 행동이라는 지적도 많은데.

"여당도 아니고, 야당 소속 시장에게 돈을 보낸 게 홍보가 되겠나. 상대는 집권당인데. "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회가 점점더 힘들고 각박해지는 것 같다. 내가 잘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은 흑기사가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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