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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체재…그 복잡한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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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 지도부는 2월 들어「팀스피리트 83」(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기화로 준 전시태세를 선포해 놓은 반면, 김정일 41회 생일(2월16일)을 기해서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를 공식 선언했다.
김일성의 혈통을 영원히 계승할 것을 다짐한『로동신문』의 김정일 생일 경축 사절은 무엇보다도 명문화된 후속 선언이라는 점에 뜻이 있다.
80년 10월에 열린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처음 공식 등장한 김정일은 당 서열 4위로, 정치국 상무위원과 비서국 필두 비서, 그리고 군사 위원회 군사 위원을 겸하는 막강한 실력자로 부상했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문헌이나 보도들은 처음에는 김정일을 직접 지명하는 것조차 삼갔다. 70년대 초부터 사용되어온「당 중앙」이라는 코드 네임이 계속 나돌았던 것이다.
김정일을 지명하여 찬양하는 캠페인이 내국인이 아닌 친 북괴 외국인에 의해서 시작된 것은 특기할만하다.
80년10월에 김정일이 공식 등장한 뒤 81년 말에 이르는 기간에 그의 설명이 신문·방송·잡지에 나돈 횟수는 결코 적지 않으나 그 기사들은 거의 모두 제3세계의 친 북괴 인사들의 이름으로 된 것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김정일 후계가 면사포를 벗어 던지고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82년4월 김일성 70회 생일에 즈음해서부터다. 김일성의 생일선물로 바쳐질 주체사상탑·개선문·김일성 경기장 등 호화로운 건축물들이 그의 감독 하에 세워진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그가 김일성 앞에서도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진은 흔히 보인다. 이 무렵 최신이 사망하고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졌다. 여기에서도 당 간부들이 의식절차에 따라 모두 머리를 숙여 묵념하는데 그만은 머리를 꼿꼿하게 세워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게다가 김정일은 41회 생일을 맞아, 개인 승용차와 관광·경호차 등 무려 99대나 되는 차량을 선물로 받았다. 금액으로 치면 3백만 달러나 된다. 현재 약30억 달러의 외채를 갚지 못하여 성화같은 빚 독촉을 받고있는 처지에서 생일선물에 그처럼 막대한 외화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북한 체제에서의 그의 지위와 개인적 성격을 잘 말해준다.
작년 8월 노동당 출판사는 김정일의 자질과 품격을 선전하기 위해서 일화집「위대한 풍모」를 펴냈다. 김정일의 그 무례하고 무궤도한 행동거지를「위대한 풍모」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82년 2월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된 김정일이 4월에 있었던 소위 행정 지도기관 선거에서 요직에 발탁되지 않은 것은 북한 관측자들간에 이변으로 간주되어 갖은 추측이 나돌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변이 아니라 행정가보다는 혁명가로서의 김정일의 본색을 드러낸 현장인지도 모른다.
그가 70년대 초부터 이끌어 온 3대 혁명 소조 운동은 모든 행정·생산조직의 관료체제에 돌풍을 일으켰다.
내막이야 어떻든 이제 그 성과는 모든 중요 연설의 서두를 장식하게끔 되었다.
더우기 작년 7월부터는「80년대 속도 창조운동」을 전개하여 60년대의 천리마 운동을 재연하고 있다.
노력동부·기술혁신·속도전을 표방하는 김정일의 소조운동은 제2차 7개년 계획을 1년8개월 앞당겨 올 4월15일(김일성 생일) 까지 조기 달성하는데 추진력이 되고 있다지만 이것은 오히려 김정일 노선이 광폭하고 저돌적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기본적으로 시설의 노후화·원자재의 공급부족·수송의 긴장 등 생산현장에 산재해 있는 애로사항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량 목표 달성을 윽박지른다면 행정관료들의 반발을 살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명∼행정간의 이같은 대립관계가 작년 고위 행정관료의 일부 이동을 초래한 것으로 보여진다. 부총리급에서만 해도 재정 통인 김경련이 실각했고 조세웅과 이근모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리고 6명의 부장(장관)급이 지방으로 전출되었거나 행방이 묘연하다.
당 기구에 있어서도 무역 통인 계응태가 정치국 정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한 반면 중견의 당료파 최영림과 서윤석이 후보위원에서 정 위원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정치국 후보위원에서는 김철만이 탈락하고 대신 서열 1백9위의 전병호와 1백24위의 김두남이 일약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발탁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같은 파격적인 진퇴현상은 김정일의 후계자부상과 떼어서 생각될 수 없는 일이다.
군부에서는 교체내용이 불투명하나 군부 총 참모장을 지낸 김철만의 실각 외에도 군부 총참모장 김익현(중장)과 중·노·영어에 능통한 인민 무력부 부부장 장정환(중장)이 잠적하고 있다. 간부직 종신제가 보장되고 있는 북괴의 권력 구조이고 보면 당·정·군의 각분야에서 동시에 일어난 이대 변동은 신·구 간부간의 마찰이 빚은 결과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지난 16일 평양 방송이 당에 통일·단결을「방해하는 현상」이 있음을 시인한 것은 바로 김정일 후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어지러운 속사정을 노출시킨 것이라 하겠다.
겉으로 관측하기에는 이번의 김일성 부자 계승의 공식선언은 그동안의 간부들의 진퇴상황에 나타난 것처럼 김정일 후계에 반발하는 반대파 제거에 일단 매듭을 지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오히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면도 있다. 왜냐하면 제5차 당 대회 이후의 김일성 1인 체제에서 10여년간 안정기반을 다져온 북괴의 권력체제가 김정일 등장과 동시에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재륜<본사 동서문제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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