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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 익명으로 보도 기사 신뢰감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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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익명 취재원을 사용하지 않는 신문이 있을까. 북한 신문은 안 봐서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신문을 찾기는 어렵다는 느낌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취재원 자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혹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지난 몇 달 중앙일보를 열심히 읽다 보니 익명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들의 모습이 생각보다 자주 눈에 띈다. 몇 기사의 경우는 정도가 지나쳐 이렇게 쓰면 독자가 믿을까 하는 경우도 있었다.

9일자 신문 1면 톱기사는 현대자동차가 2009년부터 심야 근무제를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두 취재원의 말을 인용했다. 한 사람은 "현대차 관계자"고, 다른 한 사람은 "재계 관계자"다. 한국의 노동 관행을 바꾸는 중요한 내용이고, 시민들까지 주목할 사안을 다루는 기사가 이처럼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취재원에 의지하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실명이면 본인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같은 날 1면에는 또 국방부가 평택 미군부지 예정지 일부를 강제 수용한다는 기사와 소주값 인상이 백지화될 듯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두 기사도 정보원이 각각 '국방부 관계자'와 '열린우리당 정책위 관계자'였다. 이들은 모두 공직에서 정책을 다루는 인물들인데 무엇 때문에 굳이 '관계자'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등장해야 하는지를 납득하기 힘들다.

13일에는 1면에 앞으로 미국을 여행하려면 항공기 탑승 전에 현지 주소를 기록해야 한다는 요지의 기사를 게재했다. 한.미 관계와 해마다 늘어나는 미국 방문자 수를 고려하면 역시 주목받는 기사다. 이 기사의 취재원은 특이하게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관계자'였다. 우선 드는 의문은 이 사람은 두 항공사에 모두 적을 두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고, 더 큰 의문은 왜 이 사람을 익명으로 처리했을까였다. 앞서 언급한 국방부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나면 항공사 사람보다는 압력을 더 느낄 수 있다고 판단되지만, 이 취재원은 부담을 느껴야 할 요소가 추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 가운데 익명 취재원 사용이 심했던 경우는 12일자 경제 섹션의 톱기사다. 이 기사는 8.31 조치 이후 부동산 시장의 충격을 취재했다. 어림잡아 여덟 사람이 수도권 각지에서 동원됐다.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은 남양주시 평내지구 'A공인 박모 사장'이다. 다음으로는 오남읍 '한 중개업자', 평택시 안중면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김모씨', 당진의 'O공인 사장' 등의 직함들이 제시된다. 역시 상당히 비중 있는 기사인데 실명이 제시되는 취재원은 맨 끝에 세무사 한 사람뿐이다. 모든 중개업자가 이름이 보도되는 것을 거부했을까. 독자 입장에서는 그러한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인용된 말들이 신뢰할 만한가도 의심하게 된다. 뉴욕 타임스의 퍼블릭 에디터였던 대니얼 오크렌트는 자신이 받은 독자의 불평 가운데 보도의 신뢰를 저해하는 제1의 적이 익명 취재원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쓰면 취재원과 갈등의 소지는 크게 준다. 그러나 독자의 신뢰 또한 그에 비례해 줄 수 있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