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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戰後 세계 더 위험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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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은 이라크전에서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주도면밀한 전략으로 손쉽게 승리했지만 전후 지구촌의 여론을 얻는 데는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한국 등 41개국에서 3만2천여명을 대상으로 이라크전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전후 세계정세의 안정이나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인 응답이 긍정적인 답변보다 많은 것으로 12일 나타났다.

◆세계여론을 얻지 못한 미국=조사 결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제조자로 미국이 지목한 사담 후세인 정권은 붕괴됐지만 전후 세계는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는 반응이 다수로 나타났다.

'이라크전 이후 세계가 더 위험해졌는가'라는 질문에 '더 평화로워졌다'는 응답은 40개국 중 미국.알바니아.코소보 3국에서만 다수였다.

반전 대열에 섰던 프랑스(82%).독일(72%)은 물론이고 미국을 지지했던 영국(55%).스페인(63%).일본(72%) 등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전후 세계 정세가 불안해졌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이라크전이 미국에 대한 인상을 악화시켰는가'라는 질문에도 34개국에서 '그렇다'는 응답이 '좋은 인상을 줬다'는 답변보다 많았다.

긍정 답변이 더 많았던 나라는 전쟁 당사국인 미국을 제외하면 필리핀.나이지리아.포르투갈.알바니아.코소보 등 5개국에 불과했다. 나머지 나라들에서는 이라크전이 미국에 대한 인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힘의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미국이 군사력 사용을 열망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조사 대상국의 92.5%인 37개국에서 '그렇다'가 '그렇지 않다'보다 많았다.

미국은 군사력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는 응답이 다수인 나라는 미국과 필리핀.그루지야 정도였다.

이라크전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조사 대상국의 3분의2인 27개국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정당했다'는 답변이 '정당하지 않았다'보다 더 많았던 국가는 참전국이었던 미국.영국.호주와 미국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동유럽의 알바니아.폴란드 및 이라크와 긴장관계에 있었던 이스라엘 등 14개국 정도다.

이라크전 직전 전세계를 휩쓸었던 반전 여론이 미국의 승전 후에도 여전히 잠재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번 조사에서는 반전국이던 러시아.중국과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했던 아랍권 국가들이 빠져 있어 미국에 비판적인 여론은 실제로는 더 많으리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비판국에 가세=이라크전에 지원병력을 파견한 한국이 반전 선봉에 섰던 프랑스.독일 못지않게 이라크전에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68%가 이라크전 후 세계는 '더 위험해졌다'고 답했다. '평화로워졌다'는 13%에 불과했다. 전쟁이 정당했는가에 대해서도 69%가 '정당하지 않다'고 답해 '정당하다(20%)'를 압도했다. 특히 20~40대에서는 정당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모두 70% 이상을 차지했다.

이라크전 후 미국에 대한 태도도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66%였고, '긍정적'은 13%에 불과했다.

역시 50대 이상을 제외하면 20대 이후의 세대는 절반 이상이 이라크전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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