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⑨스포츠] 89. 세계정상에 우뚝 선 한국바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1989년 응씨배에서 우승한 뒤 김포공항에서 환영을 받고있는 조훈현.

변방의 한국바둑이 세계를 제패하고 부동의 최강자로 우뚝 서는 긴 과정은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감동적이다. 조훈현 9단·서봉수 9단·이창호 9단·유창혁 9단 등 한국의 ‘사천왕’으로 이름을 알린 천재들이 동시대에 출현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는지 모른다. 이들은 400년간 갈고닦은 일본과 5000년 역사의 중국을 단시간에 정복했다. 그들은 바둑의 칭기즈칸이었다.

조훈현의 등장

1972년, 조훈현이 군 복무를 위해 일본에서 귀국했다. 아홉 살에 프로가 되어 일본 유학을 떠났던 조훈현은 일본에서도 ‘100년 만의 천재’라는 평가를 들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과감히 귀국을 선택했다. 이것이 한국바둑의 첫 번째 행운이었다.

조훈현은 곧 한국의 모든 타이틀을 휩쓸며 전관왕에 올랐다. 그런 조훈현에게도 서봉수라는 라이벌이 있었다. ‘순 국산’ 서봉수는 바둑의 정규 코스를 일절 거치지 않았으나 잡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조훈현과 359번 싸워 243번 지고 116번은 이겼다. 15년에 걸친 ‘조서(曺徐)시대’의 긴 전쟁 덕분에 조훈현의 칼은 녹슬 틈이 없었다.

80년대 후반, 중국에서 녜웨이핑

이란 강자가 출현, 일본 정상 기사들에게 11연승을 거두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녜웨이핑에게 기성 칭호를 내렸고, 바둑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누가 진정한 세계 최강자냐 하는 질문 속에서 세계대회를 만들자는 의견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세계바둑대회의 탄생

88년, 대만 재벌 잉창치(應昌期)가 ‘잉창치배 세계바둑선수권전’을 연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약간 먼저 일본에서도 후지쓰배 세계대회가 시작됐다. 잉창치배 주최 측은 세계 16강을 초청하면서 한국에선 달랑 조훈현 한 명만 초청했다. 그런데 조훈현이 세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우승을 거둔다. 조훈현은 당시 일본 일인자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에게 역전승을 거둔 뒤 린하이펑(林海峰)을 꺾고 결승에 올라 녜웨이핑과 맞선다. 결승 5번기에서 1대 2로 뒤졌으나 4국에서 또 기적의 반집 역전승을 거두고 마지막 대국에서도 승리, 상금 40만 달러를 차지한다. 한국바둑은 이 우승을 통해 세계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녜웨이핑은 우승을 의심치 않았던 이 대결에서 패배한 뒤 깊은 상처를 입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이 한 판의 승부가 세계바둑의 패권이 중국으로 가느냐, 한국으로 가느냐의 기로였던 것이다.

불가사의 이창호

‘지지않는 소년’이란 별명을 지닌 이창호는 중반전 때 이미 반집 차이를 내다보는 신비한 통찰력과 수도자 같은 부동심으로 일거에 조훈현의 천하를 접수해버렸다. 17세 때 세계를 제패, ‘인생을 알아야 바둑을 안다’는 기존의 바둑관을 뒤집어버렸다. 그는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이창호로 인해 한국바둑은 명실공히 세계 정상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중ㆍ일의 기사들조차 “누가 일인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즉시 “이창호”라고 답변했다. 서봉수 9단은 “이창호야말로 바둑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치열한 승부 근성 서봉수와 유창혁

‘야전 사령관’ 서봉수는 2회 응씨배에서 우승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칭호를 받은 유창혁은 3회 응씨배에서 우승한다. 4회는 이창호. 서봉수는 조훈현에게 끝없이 패배하면서도 종종 그의 타이틀을 빼앗는 끈질긴 생명력과 한ㆍ중ㆍ일 국가대항전에서 홀로 9연승으로 우승을 결정 짓는 놀라운 돌파력으로 한국바둑의 한 축을 맡았다. 유창혁은 93년, 도쿄 한복판에서 후지쓰배 우승컵을 차지함으로써 한국바둑의 세계 정복을 완성시켰다.

‘비금도 소년’ 이세돌과 ‘신 사천왕’

사천왕의 뒤를 이어 ‘신 사천왕’이 나타났으니 이세돌·최철한·박영훈· 송태곤이다. 특히 ‘비금도 천재’이세돌은 22세의 나이에 세계대회를 6회나 우승하면서 이창호의 뒤를 받치는 강력한 기관차 역할을 해내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한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이창호’ 탓으로 돌렸으나 이제는 이세돌을 새로운 강자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박치문 바둑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