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군 협상에 전기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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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리엘·샤론」이스라엘 국방상의 사임은 현재 답보 상태에 놓여있는 레바논-이스라엘-미국 정부간의 레바논 점령 외국군 철수협상에 하나의 새로운 발전적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보인다.「레이건」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고위 관리들은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사건에 대한 이스라엘 사문 위원회의 보고서나「샤론」사임에 관련하여 이렇다할 반응을 나타내지 않은채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미행정부의 전체 분위기로 미루어 이같은 사태 추이를 환영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스라엘 측에서도「모세·아렌스」워싱턴 주재 대사의 말처럼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자치문제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이「샤론」사임으로 바뀔지는 의문이나 철군협상을 추진하는데는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측은 지난해 연말 시작된 레바논 철군 협상을 늦어도 2월말까지는 매듭지어야할 입장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내막적으로는 오는 3월1일을「협상 종결의 마지막 날」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이스라엘-레바논 국경부근의 2개 도시에서 그동안 14차의 협상을 벌여온 결과는 「샤론」국방상 등 강경파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스라엘 대표들이 군사적 위협을 암암리에 드러내면서 레바논-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을 강요하고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 이스라엘 군으로 편성된 조기 경보 초소 설치를 요구하는 등으로 실질적인 진전은 없은채 입씨름만을 되풀이 해왔다.
미국 측은 이같은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샤론」의 퇴진이 발표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하비브」특사로 하여금 이스라엘-레바논간에 비공식 유대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전시키도록 11일 긴급 훈령을 내렸고 이와 함께 10주간에 걸친 레바논 점령 외국군의 단계적 철군안을 마련, 레바논 정부는 물론, 이스라엘 측에서도 이에 원칙적인 동의를 할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아랍 국가 지도자들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측에서도. 「샤론」의 퇴진을 계기로 이스라엘이「레이건」대통령의 중동평화 이니셔티브에 참여해줄 것을 요망하고 있다. 그러나 미 행정부나 중동의 일부외교 소식통들은「샤론」의 사임이 그동안 고조되어온 미국-이스라엘 긴장관계 해소의 기회로는. 보지만「샤론」이 계속 무임소 장관으로 남거나 아무런 공식 정책없이도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철군 협상의 급진적인 사태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강조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이스라엘의 왕, 「아릭」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샤론」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사람과 미움을 한 몸에 독차지 하고있던 인물. 화려한 군 경력을 가진 54세의「샤론」은 2년전 국방상 취임 때부터 레바논 침공계획을 세웠다고 스스로 밝였을 만큼 용기 있고 솔직하며 모험과 야망으로 가득 찬 풍운아다.
캠프데이비드 평화 협정에 서슴없이 반기를 들어 호전적이며 과격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낸「샤론」은 몸무게 1백30km의 거한으로 주변 적국들에게는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국내의적으로 많은 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던 국가들은 사임만으로 그의 난민 학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비난하고 있기도 하다. PLO측은『전쟁광의 몰락』이라면서 환영했고 소련 측은「샤론」을 국제자판에 넘겨 악몽같은 전쟁 범죄로부터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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