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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과 셀카 차원이 다른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7호 34면

크리스마스라고 큰맘 먹고 레스토랑에 갔더니 옆 테이블에서 예쁘장한 아가씨가 같이 밥 먹는 가족들은 아랑곳 안 하고 열심히 셀카만 찍고 있다. ‘음식 다 식을 텐데…’ 걱정하다가 더 쳐다보고 있으면 속으로 쯧쯧하는 꼰대처럼 보일까봐 얼른 눈길을 거두었다. 적어도 식당에서 셀카봉을 펴들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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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옥스퍼드 대학이 올해의 단어로 ‘셀카(Selfie)를 뽑았다지만 ‘셀카의 시대’ 이런 말은 2~3년만 지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 될 것이다. 아무도 지금을 ‘인터넷의 시대’‘ TV의 시대’라고 하지 않듯 말이다. 셀카는 우리가 밥 먹는 일 만큼이나 자주, 아니 밥 먹는 횟수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는 일이다.

20, 30대 때는 남아있는 사진이 손에 꼽을 만큼 적던 나도 최근 몇 해 동안은 전화기 저장용량을 가득 채울 만큼 셀카를 많이 찍었다. 생각해보니 셀카가 나르시즘 혹은 자기 자신감과 딱 붙어 있는 말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어릴 때 내 얼굴엔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데 내겐 치명적으로 느껴졌던 결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고 남의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래서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치료받고 나서 마침 폰카의 시대가 열렸고 그때부터 자꾸 내 얼굴을 찍으면서 확실히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늘어나긴 했다. 몇 년 그런 훈련을 거치자 지금은 친구들이 나의 ‘자아도취’를 지겨워하는 단계에 이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내 손으로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혁명적인 일인가. 특별히 기념해야할 시간과 장소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자, 하나 두울 셋!”하는 지휘에 따라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찍는 인증샷과 셀카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내가 특별한 순간에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기록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며, 내 모든 순간 순간이 의미가 있으며, 꾸미지 않은 내 자연스러운 모습조차 내가 선택해서 후대에 기록을 남길 가치가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할리우드의 별들이 모여서 찍은 셀카가 지난해 최고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늘상 꾸며지고 상업적으로 대중적으로 보여져야 하는 이미지만 예쁘게 담긴 자발적이지 않은 사진, 혹은 원치 않는 파파라치 샷으로 시달리는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의 진정한 기쁨이 담긴 자연스러움에서 뻗어 나온 밝은 기운이 넘쳐난 흐뭇한 셀카였다.

화산 분화구 앞에서, 우주 한가운데서, 절벽 끝에서, 스카이 다이빙 도중에 찍은 셀카들 그리고 그걸 찍다가 생명까지 잃은 소식들을 들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디지털 자화상 ‘셀카’의 마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뿐인가. 셀카가 자화상이란 뜻은 내 얼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셀카 하나하나가 사회와 시대의 자화상이다. 올해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세상에서 제일 슬픈 셀카,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찍은 셀카를 차마 제대로 눈뜨지 못하며 보았고 그건 오랫동안 아픈 역사의 자화상, 아픈 사회의 셀카로 남을 것이다.

셀카와 더불어 즐거웠고 셀카 때문에 슬픈 한해가 지나간다. 내년부터는 셀카봉보다 훨씬 더 근사한 드론셀카까지 등장한다니, 더 찍고 찍을 일이다. 셀카가 내 존재의 진실을 바꾸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어떻게 보여지고 남겨지는가를 만들어 낼 수는 있으니. 안되면 될 때까지 각도를 바꾸고 팔을 더 뻗어보고 색깔을 바꿔보고 포즈를 바꿀 수 있으니.

그리고 더 이해하고 이해할 일이다. 밥 먹는 일을 이상하게 보지 않듯 셀카찍는 걸 이상하게 보지 않기. 다만 한 가지는 바뀌었으면 좋겠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손가락으로 V 자 그리기 하나만큼은.

이윤정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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