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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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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헤이, 춤을 춰, 네 발을 보여줘! 여름내 우는 발은 지린 눈물냄새를 피웠고 겨우내 우는 발은 빨갛게 얼음이 박혔다

중력에 맞서면서부터 눈물을 흘렸으리라

두 발이 춤 아닌 날갯짓을 했을 때 보았을까 발아래가 인력의 나락이었고 애초에 두 발이 없었다는 걸

너를 탓할 수 없다 따로 울지 않으려 늘 우는 발을 탓할 수도 없다 대개가 착시였고 업으로서의 대가였다

- 정끝별(1964~ ) ‘발’ 중에서

발레를 배우던 초등학교 시절, 맨 뒷줄에서 시작한 나는 한 줄 한 줄 앞으로 진출해 끝내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백조로 선발돼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던 무대에서 긴장한 나머지 안무 순서를 잊어버렸고, 그 기억은 나를 춤에서 멀어지게 했다. 머리는 거부하지만 몸은 춤을 잊지 못해서일까. 내가 다닌 중학교는 전교생이 필수로 무용 창작 발표회를 열었는데 나의 안무가 무용반 학생보다 뛰어나 교지에 소개되는 영광을 얻었다. 악몽처럼 춤을 잘라버린 절망의 순간을 다시 잇게 된 것이다. 춤꾼은 나의 숙명이었다.

 “바닥의 총합이 눈물의 총량이었다”는 구절이 내 가슴을 저릿저릿 누볐다. 무용수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신체를 혹사하면서 자기 몸과 싸움을 벌이는지를 이렇게 명징하게 드러내다니. “가까이 다가온 발자국은 너무 크거나 무거웠으며 멀리 간 발자국은 흐리거나 금세 흩어졌다”는 구절도 몸의 형상을 찾아내려 매번 공중으로 도약하는 춤꾼의 본질을 잘 잡아챘다. ‘발’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고여 있지 않기에 진화하는 춤의 뼈대를 묘사한다. 시인의 시처럼 춤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강력한 무기다.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