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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노동의 새벽』 30년 만에 개정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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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980년대 대표적인 노동문학으로 꼽히는 시인 박노해(57)씨의 시집 『노동의 새벽』(느린걸음·사진) 개정판이 나왔다. 84년 출판사 풀빛의 판화시선으로 초판 출간된 지 30년 만이다.

 시인의 얼굴도, 번듯한 출신 배경도 없이 노동자 신분만을 밝힌 채 세상에 나온 시집이 일으킨 반향은 컸다. 손목이 통째로 잘려나가거나(‘손 무덤’) 지문이 문드러져 없어지는 화공약품 공장(‘지문을 부른다’) 등 노동 현장의 모습을 고발한 시집은 무섭게 팔렸다. 당시 정권의 판매금지 조치에도 모두 100만 부 가량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개정판은 초판본의 모습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했다. 97년 출판사 해냄 판본 이후 사라졌던 초판본의 납활자체를 되살렸다. 표지는 짙은 파란색으로 처리해 초판본 오윤 판화 표지의 강렬함을 잇고자 했다. 느린걸음 출판사의 허택 대표는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실크 인쇄 기법을 사용해 수작업의 느낌과 미학을 살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시집 출간을 주선했던 문화운동가 채광석(1948∼87)씨의 초판 해설도 그대로 실렸다.

 시집은 84년에 나왔지만 박노해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82년이다. 황지우·김정환 등이 가담했던 시 동인 ‘시와 경제’의 두 번째 동인지에 ‘시다의 꿈’ 등 박씨의 시편들이 실렸다. 당시 박씨의 투고를 받아 게재했던 시인 김사인씨는 “박노해의 시는 노동자의 척박한 현실에 토대를 두면서도 문학적 성취가 뛰어나 대망하던 작품이 드디어 나타났다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개정판 출간 소감을 들으려 했지만 박씨는 사양했다. 허 대표는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시집이 읽히기를 바랄 뿐 시인이 부각되는 것은 원치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에 가담했다가 91년 체포돼 7년 6개월을 복역하고 98년 석방됐다. 2000년대 들어 이라크 등 분쟁 현장과 아시아 각국을 순례하며 현대문명의 대안을 찾고 있다. 2010년 첫 사진전을 열었다. 지난 2월 사진전 ‘다른 길’에는 3만5000명이 다녀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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