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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이야기 당분간 안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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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8일 오후 3시30분. 멕시코로 향하는 대통령 특별기 KE101호의 이륙 30분 뒤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기자석을 찾았다. 9일이 생일인 노 대통령은 기자단이 준비한 장미 바구니와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 쑥스러웠던지 그는 "노래는 마지막의 '생일 축하합니다'만 해 달라"고 했다. 케이크 위의 촛불을 끈 노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케이크를 찍어 맛을 봤다.

이어 노 대통령은 "싱거운 소리 한마디 하겠다"며 입을 열었다. "배웅 나온 참모들에게 '대한민국은 큰 걱정거리는 없지만 걱정거리가 두 개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하나는 태풍이고 하나는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나가니 열흘은 조용할 것이고, 태풍만 잘 막으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참모들은) 그 말이 맞다는 분위기였다"는 조크까지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열흘 동안 조용할 것"이라며 "가급적 큰 뉴스를 만들지 않고 순방 중 동포 간담회도 조심하겠다"고 했다. 동포 간담회는 그간 노 대통령이 해외 방문 때 큰 뉴스를 터뜨리는 곳으로 애용해 한때 '공포 간담회'로 불리기도 했다.

이어 그는 "어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로부터 생일 축하를 미리 받았다"며 "(국내로) 돌아가도 이번 정기국회에는 정치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박 회담의 영향으로) 정국이 급랭할 것이라고들 하던데 그런 일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내가 연정 얘기만 안 하면 돕는다고 했다"며 "그러니 당분간 나도 연정 얘기를 안 할 것… 같은 얘기를 계속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단지 선거제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며 "그 외에 여야가 첨예하게 부닥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편안하게 다녀오자"는 말로 끝맺었다. 김만수 대변인은 "대연정과 거국내각 제안을 당분간 한나라당에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민주당.민노당과의 소연정을 시도한다는 것도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연정 논란은 대통령의 "당분간 안 할 것"이란 선언으로 잠복했다. 물론 김 대변인은 "적절한 시기에 다시 거론할 것", 다른 핵심 관계자는 "당분간 호흡을 조절하겠다는 정도"라며 한시적 유예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국민 여론과는 다르다"며 연정 제안을 밀어붙이던 그동안의 노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인 것 또한 분명하다. 14시간을 날아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올해 이민 100년을 맞은 '애니깽(멕시코 한인 동포)'과의 간담회를 열었다. 연정 얘기는 없었다. 대신 교민 격려와 고무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한국의 광복 60년 역사도 여러분의 이민처럼 기적의 역사"라며 "국내의 60대, 70대 어른들도 세계 최고 업적을 만들어 낸 국민"이라고 했다.

동포들은 스페인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줬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05년 9월 8일 대한제국이 발행한 첫 이민자의 여권 원본도 선물했다. 노 대통령은 "오늘 저녁 대통령이 돼서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 한.멕시코 정상회담=노 대통령은 10일 새벽 비센테 폭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21세기 공동 번영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골자로 한 21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정우성 외교보좌관은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의 80% 수준인 '한.멕시코 전략적 경제 보완 협정'을 체결키로 합의한 게 최고 성과"라고 설명했다.

멕시코시티=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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