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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만 급식' 무효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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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학교 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회원들이 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대법원의 학교 급식 조례 무효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 급식에 '우리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광역의회가 급식 조례를 만든 지역은 서울.제주.경기.전북.충북.경남 등 6곳이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의회가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 관련 조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지역처럼 '우수 농산물'이란 표현으로 바꾸는 방안이 가능하다.

◆조례 제정 어떻게 시작됐나=학교 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자는 움직임은 2001년부터 본격화됐다. 불량 식자재.저가 농산물을 사용한 학교 급식으로 인해 식중독 등 학교 급식 사고가 빈발하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조례 제정 운동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친환경적 우리 농산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약속했고 정치인들도 이에 호응했다. 17대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도 '우리 농산물' 사용 확대를 법으로 규정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2003년부터 전남 나주 등 기초자치의회를 시작으로 광역자치의회가 잇따라 학교 급식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가 제정되면 농민들 역시 학교를 통해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광역의회는 조례 제정에 적극적이었다. 조례를 제정해 달라고 서명한 지역 주민 수만 66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외교통상부 등이 "국내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을 차별조치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행정자치부도 조례 무효 소송을 내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행정자치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16개 광역의회 중 부산을 제외한 15개 의회에서 급식 조례를 제정했다. 기초단체에서도 급식 조례를 제정하는 게 붐이다. 이미 80곳에서 제정했고, 그중 42곳은 시행 중이다. 63개 기초의회도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가 국내 농산물을 쓰도록 명문화해 개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법원이 전북의회의 조례가 GATT 위반이라고 판결함에 따라 경남.서울.충북.경기의회의 조례 또한 같은 처지가 될 전망이다. 그 외 9개 광역의회에서 제정한 조례에는 '우수 농산물' 또는 '친환경 농산물'로만 표기됐다.

대법원 판결이 실제 급식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듯하다. 우리 농산물을 쓰도록 강제한 조례의 대부분은 시행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교육청이나 학교 모두 가능한 한 국내산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급식 지도 등을 통해 우리 농산물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일부 국산 재료를 구하지 못하거나 월등히 비싼 경우에만 외국산을 쓴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대법원의 판결로 학교급식 식단에 수입 농산물이 지금보다 더욱 많이 등장할 전망이다. 학부모들은 수입 농산물의 안전성을 의심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산 농수산물에서 발암 의심 물질까지 발견돼 인식이 더욱 나빠졌다. 교육당국과 학교는 이런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의 반발을 해소하는 것도 교육당국과 지자체가 풀어야 할 과제다.

고정애 기자

대법원 판결 반응
정부·교육청 "당연" 시민단체 "부당"

'우리 농산물 급식'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 당국과 교육시민단체의 반응은 엇갈렸다. 정부는 반색했고, 교육시민단체는 몹시 불만스러워 했다. 일부 단체는 대법원을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다.

◆"당연한 판결"=정부나 해당 교육청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반겼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광역 의회나 시민단체에 그간 우리 농산물 급식 조례가 GATT 협정 위반이란 사실을 여러 번 알렸고, 조례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었다"고 말했다. 우리 농산물로만 급식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교육청이나 학교 관계자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해할 수 없다"=교육시민단체들은 판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민주노동당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WTO의 농업협정 내용을 근거로 우리 농산물 사용을 위한 예산 지원(현금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이는 GATT 협정보다 우선 적용된다"고 반박했다.

학교급식네트워크 이빈파 사무처장은 "우리 농산물의 일정 비율을 소비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측에 보다 구체적인 정책과 예산 집행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국민 수백만 명이 모여 추진한 운동이라면 그 취지를 파악하는 데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느 나라 대법원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고정애 기자

학교 급식 조례 일지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 공약 "학교 급식법 개정을 통해 친환경적 우리 농산물의 일정 비율 이상 의무 사용 법제화"

.2003년 ▶9월 전남 나주시, 전국 최초로 학교 급식비 지원 조례 제정▶10월 전북도의회, '우리 농산물' 규정한 학교 급식 조례 의결▶11월 전북교육청, 도의회에 'WTO 위반' 이유 재의결 요구▶12월 전북도의회, 원안대로 재의결

.2004년 ▶1월 전북교육청, 대법원에 조례 무효 소송 제기▶6월 경남교육청, 대법원에 경남도 급식 조례 무효 소송 제기▶11월 행정자치부, 대법원에 경기도 급식 조례 무효 소송 제기

.2005년 ▶4월 행정자치부, 대법원에 서울.충북도 급식 조례 무효 소송 제기▶9월 대법원, 전북도 학교 급식 조례 무효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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