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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신북면모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울창한 대나무숲 사이에 파묻힌 이끼 오른 고옥들이 마을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 하다. 약 4백여년동안 유서방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문유의 아성』이다
입향조는 조선 성종 때 감찰을 지냈던 유용공. 그는 유명한 청백리 유관(세종조 우의정)의 5대손이다
그가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동기는 선조 유관의 권유에 따른 것. 유관은 태종 때 잠시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는데 그때 모산의 기막힌 산수에 홀딱 반했다는 얘기다.
『긍께 관할아버지는 후손들한테 모산가서 살으라고 권유한거여 형산강이 굽이쳐 돈께 땅이 기름지고, 바다가 가까운께 해산물 풍부허겠다 그뿐인감 날씨따뜻한께 한겨울도 추운 줄을 몰라』 이 마을 유인묵씨는 『선조의 입향배경』을 이렇게 들려준다.
유용공은 몽벽·몽익·몽두·몽정·몽삼등 5명의 아들(5몽)을 두었는데 그 후손들이 번성해 『문유의 집성촌』을 이루게 된 것. 마을전체 2백50여가구중 2백여가구가 유서방집이다. 면내에만 6백여 가구.
못자리가 좋으면 훌륭한 인재가 나오는 법. 유상운(숙종조 영의정)과 봉휘(영상조·좌의정)부자는 그의 후손이다.
마을중앙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영팔정』을 오르면 눈앞에 아스라이 영산강이 펼쳐진다. 유상운은 퇴직후 이곳에서 산수를 벗삼아 살았단다.
현 문화유씨종친회장 유근영씨는 그의 종손. 유씨의 집 안방에는 유상운이 영의정에 임명될 당시 숙종이 내린 교지와, 그의 50세 때 모습을 화폭에 담은 영정이 소중히 보관돼 있다.
최근들어 조선 후기 최고의 지성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영조조의 실학자 유수원 또한 이 마을이 배출한 숨은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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