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가 정부 성토장이 됐다. 내년에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발표 때문이다. 오전 9시,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
▶주호영 정책위의장=“사학연금과 군인연금도 내년에 개혁할 것처럼 나왔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끝나면 그런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정도지, 내년에 추진하겠다는 게 아니다.”
▶이완구 원내대표=“왜 그런 얘기가 나왔나.”
▶연금개혁 TF 김현숙 의원=“(정부) 실무자가 사학·군인 연금의 재정 재계산을 할 때가 됐다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김재원 수석부대표=“힘들고 어렵게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숙고하지 못한 얘기가 밖으로 나오고 이해관계자들을 걱정 끼치게 하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여당이 정부 뒤치다꺼리하다가 골병들 지경이다.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
이날 오후 2시 열린 공무원연금 개혁 토론회에서 김무성 대표도 불만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우리와 상의도 없이 정부가 마음대로 (연금 개혁 방침을) 밝혀 참 기가 막히는 심정”이라며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니 공무원이 실수로 잘못했다는데, 그게 이 정부의 무능”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으로부터 “제대로 해명하겠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자신의 표현대로 “욕에 욕을 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김 대표는 특히 군인연금의 경우 직무의 특성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의 서슬에 안 수석은 기획재정부에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토록 했다. 사학·군인연금 개혁은 이렇게 해서 하루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새누리당이 이처럼 뿔난 건 ‘당과 아무런 상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전날 ‘2015년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 앞서 당정협의를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선 연금 개혁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한 참석자의 전언은 이렇다.
“중요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정협의에서 논의했을 텐데,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배포한 요약본에는 연금과 관련해 국민연금 운용의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내용만 있었을 뿐 군인·사학 연금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군인연금과 사학연금을 개혁하겠다는 건 어떻게 발표된 걸까. 지난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당시 발표문에는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 3개 공적연금에 대해서는 내년(2015년)에 재정 재계산을 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법도 개정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2015년 경제정책 방향 발표 자료를 만든 실무진이 이 문구를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준용하는 바람에 사태가 커졌다.
새누리당이 사학·군인연금 개혁을 막아선 건 공무원연금 개혁의 피로감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하나를 놓고서도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나머지 공적연금까지 건드릴 경우 전선만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원내 관계자는 “최근 야당과 임시국회 일정 등을 놓고 치열한 협의를 하는 마당에 정부가 이를 돕지는 못할망정 공격당할 빌미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