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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윤제균 영화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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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

- 김현승(1913~75) ‘아버지의 마음’ 중에서

마냥 엄하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대학 2학년 무렵 돌아가셨을 때는 남기신 말씀이 이해가 안 됐다. 20대 초 내게는 그저 잔소리요 짜증 정도로 남았다. 2004년 첫째 아이가 태어나 내가 아버지가 되고 보니 비로소 아버지가 들리고 보였다. 가족을 위해 평생 고생하셨던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가슴이 저렸다. 당신 삶에 당신은 없었다. 살아계실 때 감사하다는 얘기 한마디 못한 게 한이 됐다. 전 해에 만든 ‘낭만자객’이 실패해 새 영화에 대한 투자가 여의치 않은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꼭 아버지 얘기를 영화로 만들리라.

 영화 ‘국제시장’은 이렇게 10년 동안 내 몸에서 무르익은 작품이다. 준비 작업 중에 우연히 이 시 ‘아버지의 마음’을 읽게 된 뒤 옆에 걸어두고 시나리오가 막힐 때마다 몇 번이고 읽고 바라보게 되었다. 아버지 세대에 대한 연민이 끓어오르면서 이 영화는 자연스레 그분들에 대한 헌사가 되었다.

윤제균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