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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9) 제79화 육사졸업생들(72) 4기생 장성들의 현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4기생이 재학중일 때 육군의 각 병과 선임장교들이 서로 좋은 인재를 확보키 위해 사관학교로 찾아가 병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던 일이 기억난다. 일종의 스카우트 작전이었다.
자유당때 현역(중장)에서 상공부장관으로 발탁되어 내무부장관·교통부장관을 지낸 김일환장군 (69·군영·만군출신·현한진관광사장)이 당시 통위부 경리국장으로 있었는데 4기생졸업을 2주일 앞두고 사관학교에 나타나 생도들을 일일이 면접하여 경리요원으로 뽑아가려 했다.
이때 김장군은 황인성생도에게 경리병과를 권했다. 그러나 황인성생도는 이를 거절하고 보병장교로 갔다. 그러나 6개월후 통위부에서 일방적으로 전과발령을 내버려 그후 그는 계속 경리장교로 남게 됐다.
50년대말 미국 군원이 쏟아져 들어와 이에 대한 재물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참모총장인 송요찬중장은 재물조사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친히 경리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았는데 황인성장군이 그때 대령으로 경리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송장군은 황대령의 강의와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경리감으로 발탁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원태섭 (65·군영·준장·천안태생·재미) 이효 (71·2기·소장·함남정평·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분회장겸 무역협회고문)장군이 대령으로 경리감을 했고 황장군 직전에는 이규동장군(2기)이 했다. 황장군은 육군의 경리감으로 최초의 소장이 된 것으로 기억된다.
황장군은 5·16후 조선전업 사장이 되어 전기 3사를 통합, 오늘의 한전을 만들어 내고 이어 외자청장을 맡아 조달청으로 개편해 놓았다.
퇴역후엔 호남정유이사로 있다가 무임소장관인 후배 경리장교 이병옥씨(7기·전북부안)의보좌관으로 갔다.
그 인연으로 김종필총리의 비서실장·고향인 전북의 도지사·교통부장관을 하게 됐고 10·26후에는 관광공사사장을 하다가 11대 국회로 진출했다.
황장군이 같은 병과 후배이며 고향후배인 대령 출신의 이병옥장관 보좌관으로 들어갈 때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런 것 아랑곳 않고 성실하게 책임을 맡아 해내서 장관과 국회의원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4기생 준장출신으로는 고임현 (6l·함남북청) 곽철종 (58·충북청원) 김충양 (64·황해안줄) 배두용 (58·경남 김해) 백기항 (63·평북용천) 설재련 (58·전남진도·캐나다이민) 예철수(56·평남영원) 이주호 (57·경북경산) 조정연(57·강원명주)장군등이 있다.
사단장까지 지낸 고임현장군은 내가 1군 사령관으로 있을 때 작전참모였는데 아주 착실한 분이다. 전역후 서울해운 전무를 지내다 교육계로 전신, 현재 11년째 서울영동고 교장으로 있다.
김충양장군은 1군 관리참모까지 지냈는데 그의 가친은 황해도의 큰 부자로 알려져 있었다. 김장군은 지금 병석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공사 고문으로 있다.
배두룡장군은 1군단 부군단장까지 지냈고 예편후에는 국가안보회의 비상기획위원회 2부장을 지냈다.
그는 6·25때 5연대 부관으로 있다가 공산군의 포로가 됐었다. 북괴군은 국군의 전개상황·작전계획등을 배장군에게 추궁하다 그가 말을 안하자 총 3발을 쏘아 처형했다. 그러나 급소를 안맞아 절명하지 않고 잠시후 되살아나 부상한 몸을 끌고 포위망을 벗어나 5연대를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백기항장군은 부관장교 출신인데 5·16후 총무처 인사국장·소청심사위원을 거쳐 근 8년동안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냈다. 강직하고 능력있는 장교였다.
이주호장군은 통신장교 출신으로 육본 인사참모부 차장으로 예편, 75년부터 지금까지 국립묘지 관리소장을 맡고 있다.
요즘은 대전국립묘지 손질에 바쁜 가운데도 동기생일은 도맡아 보고 있다.
조정연장군은 11사단장·군수기지 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고 나의 작전참모로도 있은 적이 있다. 예편후 지하수개발공사 전무를 맡아 농업용수 개발에 애썼다. 특히 유엔개발계획 (UNDP) 에 의해 지하수 조사사업단이 발족됐을때 정부측 대표로 참석했고 지금은 지하수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이다. 현재 삼양이주공사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곽철종장군은 사단장·전투교육기지사령부 부사령관·육본 군수참모부차장을 지냈는데 얘기하기를 즐기고 착상이 좋아 상관에게 기발한 건의를 잘 하기로 유명했다. 예편후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을 지낸 아주 건실하고 쾌활한 성격이다.
5군단 참모장·육군 군수참모부장을 지낸 설재련장군은 아주 부지런하고 일 자체에 큰 보람과 흥미를 가지고 처리해온 사람이다.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지금은 캐나다에 이민가 있다.
예철수장군은 육본 민사감을 지낸 민첩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다. 『용진가』를 짓고 『군사학대사전』(세문사·1964년)을 편찬해낸 1기생 중퇴자 예관수씨의 동생이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만군출신인 예관수씨는 6·25때 군에 복귀하여 육군보도과장·작전과장·정훈학교 교장을 지냈고 예편후에도 군사서적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병학사 사장으로 있었다.
저서로는 『중공군의 유격전법』『한국의 동난』등이 있다.
4기는 출신 장군 16명중 1명이 이민했을 뿐 전원이 생존해 있는 행운의 기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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