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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191. 의도된 오심은 범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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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91년 7월 6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한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강도였다. 금품을 요구하며 두 명의 여자를 위협하던 강도는 이를 보고 말리기 위해 뛰어든 한 남자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 남자의 용기 덕분에 두 여인은 화를 면했다.

그러나 그 용감한 시민은 허리에 총을 맞고 하반신 마비가 됐다. 그는 2년여를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끝에 걸을 수 있게 됐지만 당시에는 평생을 바쳐온 직업을 잃었다. 휠체어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스티브 팔레르모. 그날 두 여인의 목숨을 구한 그 용감한 시민은 곧바로 미국의 영웅이 됐다. 용기와 정의감의 상징으로 떠올라 강연 요청이 빗발쳤다. 그의 직업도 그가 정의의 아이콘이 되는 데 한몫했다. 그는 정의.소신.정직을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메이저리그 심판이었다. 정의로운 그의 행동은 진정한 심판상이 됐다. 그의 용기와 양심은 미국사회 전체에 메이저리그 심판의 신뢰도를 한껏 높였다.

팔레르모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심판은 정의를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직업이다. 야구에서 심판은 전통적으로 파란색 옷을 입었고,'맨 인 블루'라고 불린다. 파란색이 정의의 상징이자 청렴의 이미지와도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렴해야 마땅할 심판들이 지금 한국에서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 대통령배 고교야구 지역예선에서다. 그 현장이 고교야구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학생야구는 수업의 연장이다. 운동장이 곧 교실이다. 그 신성한 교실에서 학생들의 맑은 영혼을 상대로 승부를 조작했다? 이건 거짓과 협잡을 가르친 것과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마야구 심판 부조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협회는 심판의 소명의식과 순수성을 고취시키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심판 스스로는 자정의 노력은 물론 자신이 야구의 미래, 스포츠의 미래, 나아가서는 나라의 미래를 키우고 있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 중요한 위치에서 자라나는 뿌리를 검게 물들이는 것은 곧 나라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프로야구 심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프로야구는 복권사업 스포츠토토와 연관돼 있기에 더욱 그렇다. 청렴과 정직의 상징이 된 메이저리그도 초창기인 1882년에 리처드 하이햄이라는 심판이 제명된 적이 있다. 그가 오심을 했거나 부정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도박사와 만났다는 이유였다. 제명당한 심판은 억울했을 수도 있지만 부정이 자라날 소지가 있는 싹을 처음부터 잘라버린 메이저리그의 강한 정책이 지금의 청렴과 신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심판에게 오심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심과 조작은 다르다. 의도된 오심은 조작이며 곧 범죄다. 팔레르모처럼 정의의 사도가 될 것인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범죄자가 될 것인가. 이는 곧 심판의 정의감과 양심에 달려 있다.

<텍사스에서>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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