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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 미리 대비 … 태풍 피해 줄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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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낙과 … 낙심
태풍 ‘나비’가 추석 대목을 앞둔 과수 농가에 큰 피해를 줬다. 7일 경북 경주시 강동면 단구1리의 한 과수 농가에서 농민들이 떨어진 사과를 줍고 있다. 경주=조문규 기자

역시 유비무환(有備無患)이었다. 6일 태풍 '나비'의 영향으로 강풍과 폭우가 몰아쳤던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큰 피해가 나지 않은 것은 민.관.기업의 철저한 대비 덕분이었다.

이는 2003년 9월 부산과 경남에 엄청난 피해를 남긴 태풍 '매미'가 교훈이 됐다. 나비는 매미보다 많은 비를 쏟아부었지만 인명.재산피해는 훨씬 작았다.

매미 때 17명 사망, 116명 부상, 6200여억원의 재산피해를 냈던 부산은 이번엔 1명이 다치고, 재산피해는 50억원(추정)에 불과했다. 최고 590㎜의 폭우가 내렸던 울산도 매미 때 1500억원의 10%도 안 되는 100억원(추정)의 재산피해를 봤을 뿐이다.

부산항에는 6일 순간 최대풍속 40.5m의 강풍이 몰아쳤지만 컨테이너 크레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산항만공사는 지난 1월 이들 크레인을 75m의 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보강했다. 종전 50m였던 내풍설계를 25m 더 높인 것이다. 항만공사는 매미 때 순간 최대풍속 42.7m의 강풍에 8기의 크레인이 붕괴되고 3기가 궤도를 이탈해 항만기능이 마비되는 사고가 나자 이 같은 보강작업을 했다. 여기에다 항만을 폐쇄하고 컨테이너 전용부두에 설치된 컨테이너 크레인을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묶었다.

울산 현대자동차도 이날 완성차의 피해가 전혀 없었다. 선적 부두에서 수출길에 오를 자동차 8000여 대를 태풍 예보가 있은 2일부터 회사 내 고지대 야적장으로 옮겼다. 공장과 인접한 부두에 있던 자동차운반선 9척은 서해 흑산도와 군산항으로 옮겼다.

태풍 때마다 건조 중인 선박이 파손돼 피해가 컸던 현대중공업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 회사는 매미 때 부유식 원유 정제 저장운반선이 파도에 밀려가 인근 현대미포조선의 석유화학운반선을 들이받은 사고를 염두에 두고 선주사에 인도되기 직전의 대형 컨테이너선 등 선박 7척을 서해 홍도 주변으로 대피시켰다. 10여 척은 안벽에 단단히 묶었다. 현대미포조선도 중형 선박 2척을 역시 서해로 대피시킨 덕분에 서문 쪽 담벽 20m가 무너지는 피해밖에 없었다.

석유화학공단의 SK와 S-Oil도 각각 원유운반선 3척과 1척을 서해상으로 대피시켰고 밤새 비상대책본부를 운영하며 폐수처리장 범람이나 시설물 침수에 대비했다.

공무원들과 주민들의 신속한 대처도 큰 피해를 막았다.

6일 오후 6시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좌광천 일대가 250mm의 집중호우로 범람 위기에 놓이자 인근 시장마을 등 3개 마을 주민 43가구 134명이 기장읍사무소 등으로 긴급 대피했다.

기장군청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좌광천 범람을 예상, 수심을 체크하다 범람 직전에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켰다.

기장군청은 7월 자체 제작한 재난방지 대처 매뉴얼에 따라 좌광천 제방에 양수기 5대, 모래주머니 1300여 개를 비치하는 한편 주민대피소를 마련했다. 공무원들이 나서자 주민들도 모래주머니를 나르거나 노약자.어린이들을 대피시키는 등 재난방지 활동을 도왔다.

매미 때 해일로 초토화되다시피했던 해운대.서.강서구, 기장군 주민들은 5일 오전부터 집기류를 안전한 장소로 옮겼고, 횟집들은 활어 등을 안전지대로 옮겼다. 해일주의보가 내린 경남 거제도의 일운면 와현.예구 마을 주민 20여 가구 40여 명은 일운면사무소의 지시에 따라 마을회관과 교회 등으로 곧바로 대피했다.

부산.울산=강진권.김상진 기자 <jkkan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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