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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 대입 논술 가이드라인 논란

어떤 현상 나타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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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교육인적자원부의 '논술 기준'을 대학들이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한 달도 안 남은 수시 2학기 모집 전형을 앞두고 고려대.서강대 등이 교육부 기준에 맞춰 부랴부랴 출제 기준을 바꿨다. 논술에 포함됐던 영어 지문이 사라지고, 국어 지문만 2~4개 나온다. 대학들은 이공계.자연계의 수리 논술 방식도 바꾸기로 했다. 풀이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했던 과거의 문제유형 대신 다양한 풀이 방법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서강대는 5일 수시 2학기 모집에 이공.자연계열에서 나올 수 있는 논술 문제를 예시했다. '줄자와 각도기만을 이용해 해변에서 섬까지의 거리와 섬의 높이를 알아내는 방법'을 설명하는 문제다. 삼각함수 등 수학 지식만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며, 풀이 과정도 6~7개나 되는 등 다양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논술 패턴의 변화는 수시 2학기는 물론 정시모집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학들은 교육부의 논술 기준에 당장 몸을 맞추고 있다. 이러다 보면 대학들이 쉽게 평가하고, 쉽게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본고사형 문제를 낸다는 비난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당초 교육부의 '영어 지문 제외'에 대해 "세계화 흐름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던 대학들의 목소리도 줄어들고 있다.

변화는 학원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퍼지던 영어 논술 학원은 당장 된서리를 맞았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학들은 정시모집 이후부터 구술.면접고사 비중을 중시하려 하고 있다. 구술.면접고사는 논술고사처럼 규제를 받지 않는다. 과목별 구술.면접고사는 지금까지 '말로 하는 본고사'라는 오해도 받아왔다. 과목별 전문지식을 묻는가 하면 영문 지문을 보고 답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돼 왔다. 대학 관계자들은 "특히 심층 면접은 학생들의 실력을 가를 수 있는 좋은 잣대"라고 말해 왔다. 이처럼 대학들이 구술.면접 비중을 강화할 경우 논술기준의 효과는 반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상당수 수험생은 학교에서 구술.면접 고사를 준비하기 쉽지 않아 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해 왔다. 사교육 시장도 점차 구술.면접 대비 쪽으로 쏠리고 있다.

한쪽을 규제하다 보면 규제가 적은 쪽으로 쏠리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논술 기준이 사교육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강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