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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실장이냐 신앙의 길이냐…|전 국방부장관 김성은장로의 고백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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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79년10월27일 새벽. 「박정희대통령유고」라는 신문호외가 새벽잠을 설치게 하며 쏟아져 나왔을 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는 심장을 진정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주여, 제발 그분의 몸에 이상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는 한 지도자가 비명에 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지켜주시던 하나님 이 민족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그 날나는 인생의 고독을 절실히 되씹었다. 박대통령의 비보는 무정한 삶의 비극적 회오리를 적막하게 지켜보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살아서 돌보고 계신가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했다.
그러니까 박대통령이 생존해 있던 불과 몇 달전의 일이었다. 하루는 청와대로부터 급히 전갈이 왔다.
『대통령께서 면담을 원하신다』는 짤막한 한통의 전화전갈은 온통 나의 가슴을 휘저었다. 나를 청와대비서실장으로 등용하려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전화였다.
그러나 이때 나의 마음은「영광」을 향한 출사표보다는「예수·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신앙에의 길로 향했다.
모태신앙으로 세상에 태어나 성직자가 돼야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성은」이라는 이름까지 갖게된 나였다.
그러나 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며 세상과 친하다보니『창세기』이야기는 신화처럼만 들렸고『출애굽』의 사건은 과장된 이스라엘의 민족형성사로만 들렸다.
그래서 신앙상으론 기독교인이면서도 비기독교인으로 자연스럽게 전락되는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오직 잘되는 일은 김성은의 역량으로만 믿고 뛰다보니 담석증에 걸려 신음하게돼 생명을 집도의에게 맡기고 수술실에 무력하게 갇히고 말았다.
병원수술실에서 나는 비로소 『주여, 이 어리석은 죄인을 용서하옵소서』라고 신앙고백을 했다.
그러나 이 신앙고백도 나를 신앙인으로 휘어잡기에는 연약한 것이었다. 관직에서 은퇴한 사람이 겪는 어쩔수 없는 허탈감은 쉽게 치유될 수 없었고 마력같은 그 어떤힘이 내전신의 힘을 빼는 것이었다.
병원을 퇴원해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나의 울음소리에 온 가족이 놀라 잠자리를 뛰쳐나와 나에게로 모이는 회개과정을 거치며 신앙을 더욱 굳혔다.
나는 회개와 전도과정을 거치면서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해야될 일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발견하게 됐다.
복음전도자-. 얼마나 부모님께서 나에게 애타게 갈망하던 소원이기도 했던가.
지프앞에 별을 붙이고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뵈러 갔을 때 온동네가 떠들썩했고 동네주민들의 선망과 애정이 담긴 뜨거운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휴전직후 20대젊은이로 금의환향한 나를 반기면서도 소홀한 나의 신앙을 못내 아쉬워하는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우던 그 모습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않고 있다.
박정희대통령이 이처럼 신앙에 침잠한 나에게 다시 입각해 달라하니 그 어려운 부탁을 어떻게 거절해야 좋을 지 정말로 난감하기만 했다.
나는 기도를 했다.
나는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고 기도를 거듭했다. 그러나 끝내 나는 입각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복음전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을 굳혔다.
박대통령이 면담을 원한다는 전화가 있었던 다음날 정오가 가까워 다시 전화가 왔다.
『대통령께서 기다리고 계신데 왜 그리 꾸물거리느냐』는 호된 책망이었다.
나는 이때 밤새워 기도한 결심이 또 한번 흔들리는 혼돈과 마주해야 했다. 청와대에 들어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나의 내면 깊숙이에서는 피나는 갈등이 계속 됐다. 이때 가슴을 후려치는 음성이 들렸다. 『쟁기를 잡은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아멘」을 크게 외쳤다.
나는 곧 바로 짐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 한 시골교회의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충주로 차를몰았다.
결국 청와대비서실장자리는 같은 기독교인 김계원장군이 맡게 됐고 불행하게도 그는 박대통령시해의 현장에 동참하는 운명의 피해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박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청와대를 빠져나갈 때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만약 몇 달전에 박대통령의 부름을 받아들여 비서설장의 중책을 맡았더라면 그 비극의 자리에 안앉혀졌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쟁기를 잡은 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청와대비서실장자리를 끝내 사양케했던 이 음성은 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오늘도 복음전선에서 열심히 뛰게 하고 있다.
남은 여생의 소망은 죽는 날까지 이 걸음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지는그「외길」뿐이다.

<광화문교회발행「광화문뉴스」제2호에서 요약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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