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 대통령·김정은, 러시아에서 돌파구 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2005년 김정일 위원장(왼쪽 둘째)은 러시아 승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 하루 전날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 오른쪽은 안드레이 카를로프 대사. [중앙포토]

청와대가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일(5월 9일)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동시 초청(본지 12월 20일자 2면)한 사실을 확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러나 “모스크바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것은 맞지만 내년 일정을 검토해 봐야 하기에 (방러를) 결정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승전기념일까진 5개월가량 시간이 남아 있으니 전략적 고려를 충분히 한 뒤 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김 제1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박 대통령이 참석할지, 참석 시 김 제1위원장과 단순 조우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킬 것인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놓고 고심하고 있다.

 ◆김정은 참석 시=정부의 고민은 김 제1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다. 2011년 집권 후 국제무대 데뷔를 못한 김 제1위원장으로선 이번이 기회다. 지난달 최용해 노동당 비서를 러시아에 특사로 보내 푸틴과의 정상회담 의지도 보였다. 김근식(정치학) 경남대 교수는 “서방에서 교육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은둔형’이던 아버지와 다르다”며 “최용해가 러시아를 방문한 직후 푸틴이 화답 성격의 초청을 했기에 방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정부엔 ‘부담’이자 ‘기회’다. 정부 내 의견은 갈린다. “남북이 한반도가 아닌 제3지역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러시아 행사에서 남북이 이목을 너무 끄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정상 간의 만남이야말로 고착된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로서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내년이 광복 70주년인 만큼 역사적 의미나 집권 3년차의 동력 확보를 위해서 좋은 기회”라면서도 “북쪽과 사전 교감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정상회담 카드를 허망하게 날려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초 남북 고위급 접촉 등을 통해 해결이 시급한 의제를 정리하며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불참 시=북한의 참가를 낙관할 순 없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중국보다 먼저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하는 건 부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러시아와 단독 회담을 통해 주목받기를 원하는 만큼 승전기념일 대신 별도의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번 승전기념일을 서방의 제재를 탈피하는 계기로 삼으려 하는 러시아 입장에선 북핵이나 인권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북한엔 차라리 ‘독상’을 차려주는 게 나을 수 있다. 김 제1위원장이 불참하면 박 대통령의 선택부담은 줄어든다. 하지만 이 경우엔 미국 오바마 대통령 등의 거취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 불참 시=러시아는 이번에 남북한뿐 아니라 미국·중국·일본 등 6자회담국 모두에 초청장을 보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들은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등이 행사 참여를 보이콧하면 일본 등도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박 대통령만 러시아의 초청에 응하기도 쉽지 않다.

 선택 시간을 택할 때도 전략적 고려가 필요하다. 2005년 러시아 승전 60주년 기념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2월 초께 행사 참가를 조기에 확정했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압박 차원이었다. 노무현 정부 관계자는 “김정일이 국제행사에 참석한 전례가 없었지만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두고 우리가 먼저 참석 의사를 밝혔다”며 “공을 북한에 넘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의 초청에 응하지 않고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찾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했다.

정원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