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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정치권 싸움에 … 잠자는 '클라우드 특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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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영국 등 선진국보다 5년 가량 뒤처진 클라우드 산업을 따라잡기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클라우드 특별법)’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기한없이 볼모로 잡혀 있다.

 지난해 10월 미래창조과학부가 국회에 특별법을 제출했지만 여·야 정쟁에 발이 묶여 1년이 넘도록 법안이 계류돼 있다. 클라우드 특별법은 정부 부처, 대학 같은 공공기간들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게 핵심 골자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기관·대학 같은 공공 기관이 민간업체로부터 서버를 빌려쓰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일절 금지된 국가다. 2005년 제정된 전자정부법에 따라 행정기관의 전자 문서 보안 부문을 책임지는 국가정보원이 ‘보안성 문제’를 이유로 공공 영역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원천봉쇄 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정보기술(IT) 산업의 ‘기본’인 서버와 소프트웨어(SW)를 직접 구매하는 대신 민간업체로부터 빌려써 제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서비스다. 해외에선 클라우드가 차세대 정보사회 구축을 위한 핵심인프라로 중시되면서 기업들은 물론 정부·공공기관도 앞다퉈 관련 기술 도입과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클라우드 특별법이 국회 해당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조차 통과하지 못한 실정이다. 방송법, 국정원 불법 사찰 의혹 같은 정치 이슈에 휩쓸리면서 미방위가 올 한해 내내 공전됐기 때문이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처음부터 문제삼은 것은 클라우드 특별법에 포함된 국가정보기관(국가정보원) 관련 부분이다. 특히 ‘공공 부문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에서 침해사고가 나면 서비스 제공자가 즉시 국가정보원장에게 통지하도록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문제였다. 국정원에서 언제든지 클라우드 서버를 열람하고 감시하는 이른바 ‘ 빅 브라더 통제’가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래부가 이달 초 ‘국정원 개입 조항을 전면 삭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서야 법안 처리 논의가 재개됐다. 서성일 미래부 소프트웨어융합과장은 “국정원 관련 조항은 당초 기존 전자정부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명시된 국정원 개입 범위를 최소화시킨다는 목적에서 만들었다”면서도 “연말까지 법안 처리가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관련 부분을 재개정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미래부의 법안 수정 제안으로 고비를 넘긴 듯한 특별법 처리는 이달 17일 또다른 암초에 부딪쳤다. 이른바 ‘비선 실세 논란’과 청와대 문건 유출 문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이 12월 임시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했기 때문이다. 미방위 한 관계자는 “야당이 전면적인 활동을 보이콧한 상황이라 현재로서는 향후 법안 처리 일정이 언제 재개될지 아무도 기약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2017년까지 ‘공공기관의 15% 이상이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운 미래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공공부문에 적용할 클라우드 특별법이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여·야 정치권 대치이지만, 국회의원 개개인의 오해와 선입견도 한몫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이달 초 열린 공청회에서 “‘카카오톡 검열 논란’ 사태가 클라우드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 영역에서는 클라우드보다는 직접 서버를 구축해 사용하는게 보안 우려에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은 일반 서버보다도 보안성이 오히려 높다는 게 학계 반론이다.

 KAIST 이윤준 교수는 “클라우드는 모바일 환경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정보 입·출이 모두 기록되는 특성이 있어 정보기관이나 수사 기관조차 편법 접근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정치인들 주장대로 특정 장소에다 서버를 모아놓고 집중시켜 관리한다는건 데이터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물인터넷 시대 ‘초연결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와 달리 해외에서는 민간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자국 내 클라우드 산업 발전을 위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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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연방정부의 클라우드 도입을 권고하는 ‘클라우드 퍼스트 정책(Cloud First Policy)’를 가동중이다. 이미 국가 정보화 예산 가운데 25%를 클라우드 서비스에 사용할 정도다.

 특히 국정원과 달리 미국은 국가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이 앞장서 올 8월 아마존과 6억 달러(약 63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정보 분석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더그 울프 CIA 최고정보책임자는 “정보기관 임무는 나날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아마존이 보유한 최고의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CIA는 단순히 아마존 서버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각종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첩보 업무 효율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정보화 수준이 낮다고 평가되는 일본조차 2015년까지 1800여 개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클라우드 기술을 도입하는 ‘가스미가세키(霞ヶ關) 클라우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2년 정부 클라우드 서비스인 ‘G 클라우드’를 구축한 영국 정부는 올 4월 IT 서비스 비용을 전년 대비 50% 절감했다고 밝혔다.

 민간 부문의 클라우드 전략은 정부 정책보다 훨씬 빠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세계적 업체들은 이미 클라우드 용 서버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기반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구축한 상황이다.

 물론 국내 일부 기업들도 개방형 클라우드를 속속 채택하고 있다. 정보 보관·유통 비용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아이돌 ‘소녀시대’와 ‘엑소’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2011년부터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같은 대용량 콘텐트가 많은 데다 세계 각지 팬들의 접속이 크게 늘어 서버 사용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의 경우 처음부터 자체 서버를 구축하는 대신 글로벌 업체로부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빌려쓰고 있다. 그러나 민·관 할 것 없이 선진국의 클라우딩 컴퓨팅 인프라 구축과 비교해선 훨씬 뒤쳐진 상태다. 최백준 틸론 대표는 “정부와 대기업이 민간에 보안 분야를 내주는 걸 두려워하고 일반 국민들 역시 ‘클라우드는 위험하다’고 오해하는 사이 한국은 클라우드 분야에서 후진국이 돼 버렸다”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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