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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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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바로 옆집은 벽 하나 사이에 방이 붙어 있었고 출입구만 우리와 반대편 골목에 나있었는데 술집 아가씨 둘이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우리보다도 더욱 늦은 밤이나 새벽에 돌아와서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거나 가끔씩 기둥서방 같은 자가 찾아와서는 싸움질이었다. 우리가 참다 못해 벽을 몇 번 두드리면 처음에는 잠잠해졌다가 다시 떠들어대곤 했다. 싸우는 이유가 거의 돈 때문인 것 같았다. 일수돈이 어떻고 지난번에 가져간 돈이 얼마고 목청껏 떠드는 내용의 대부분이 그랬다. 내가 마도로스와 같이 벌집에서 살 때에도 스페어 운전수 부부는 돈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다. 아내는 집에 남아서 구슬백을 꿰어 납품을 해다가 반찬 값이라도 들고 오면 운전수는 일당을 받아서 술 먹고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 예이 니미랄, 우리가 은행을 점령해서 돈을 찍어다가 뿌려주든지… 정말 시끄러워 못살겠구나!

그래도 친목회라고 생각이 있는 노동자들과 주말에 만나서 직장 얘기를 하다 보면 우리네 앞날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야말로 공단의 작업장 전체가 연대하는 연합노조는 멀고 먼 꿈처럼 여겨졌고 단일공장의 노조도 몇 년이 지나야 가능할지 캄캄절벽으로 보였다. 그러니 전태일이 혼자서 몸부림치다 스스로 횃불이 되었겠지. 마도로스나 홍 반장이나 근호 같은 이들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의지가 있었던 사람들이니 자기 인생을 잘 헤쳐나갔으리라 믿고 있다.

어느 날은 학규와 공단 입구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그는 점퍼 차림에 그래도 깨끗한 와이셔츠를 받쳐입고 있었다. 안경을 썼지만 눈초리에 성깔이 보였다. 학규가 공단 본부 사무실에서 나오는 그를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 여긴 웬일이쇼?

- 요즈음 여기 출입하구 있어.

그는 동아일보 기자였는데 바로 이부영이었다. 학규와 그는 아마도 백기완의 백범사상연구소에서 낯을 익힌 모양이다. 나중에 동아 조선의 자유언론 사건이 생기기 직전에 오랜 여성 노동운동가였던 이 마리아가 다시 그와 나를 소개했는데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근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 잔씩 걸쳤다. 그리고 또 어느 주말에는 우리도 가끔씩은 구로공단에 처박혀 지내는 동안에 외로움이랄까 귀양살이하는 기분을 떨쳐버리려고 시내 중심가로 진출을 하는 날이 있었다. 우연히 소공동 부근에서 이수인을 만났다. 우리 둘 다 그를 형으로 부르며 잘 알던 사이였다. 이수성, 이수인, 그리고 막내인 이수억이 형제들을 주위 사람이 모두 좋아했는데 특히 수인이 형은 그야말로 의리의 사나이였다. 나는 특히 막내인 이수억이와 술로 고락을 같이 했는데 그래서 그의 집안 내력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의 부친은 유명한 변호사로 전쟁 때 납북되었다. 엄하고 생활력 강하던 어머니 밑에서 남매들이 모두 공부 잘하고 잘 컸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 형제가 모두 수호전이나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처럼 덩치도 크고 성격도 호방해서 웬일인가 싶더니, 수억이가 말했다. 전쟁 때에 집 근처에 개장국 식당이 있었는데 이웃이라 돈 몇 푼을 주면 고기는 못 주어도 국물은 한 냄비씩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 형제들이 개장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고 그렇게 건장하게 컸다나.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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