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을 갈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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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3학년도 대학입시학력고사 성적분포가 5일 발표된 데 이어 7일에는 개인별 성적이 출신학교를 통해 통보된다.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지망할지를 놓고 지금 한참 초조해하고 있을 것이다. 예년 같으면 3백 점 이상 득점을 하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으나 금년의 경우 3백 점 이상 득점자만 6천명을 넘게 헤아리게되어 선택의 진통은 한결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까지는 2개교까지 지망할 수 있었으나 눈치작전을 없앤다고 1개교 3개 학과만을 지망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진 것이 금년도 입시의 상황이기도 하다.
해마다 입시 철이면 느껴지는 일이지만, 대학이나 학과선택이 수험생들의 자질이나 희망보다 학력고사 성적에 의해 좌우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적잖이 우려되는 현상이다.
좋은 대학의 이른바 인기학과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수험생들의 한결같은 희망일 것이다. 그러나 고득점자라고 해서 그 대부분이 몇 개 인기학과에 편중 입학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물론 한 개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작년 서울대학교의 경우 3백 점 이상 고득점자의 74%가 법대 등 몇몇 학과에서 입학했다는 사실은 일부학과 편중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한마디로 나타내주고 있다.
한나라가 발전하는 으뜸가는 조건은 많은 인재를 양성하는 길뿐이다. 그리고 인재들이 각 분야에 골고루 배치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류에 따라 적성에도 맞지 않고 별달리 소질도 없으면서 단지 학력고사에서 얻은 성적에 집착해서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모인 학과에 입학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미개척분야에 뛰어들어 국가발전에 공헌하고 나름대로 보람을 찾는 것이 떳떳한 일이 아닐지 곰곰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기회가 있을 매마다 지적한 일이지만 산업사회 후기에 접어든 길목에서 우리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사회상황은 물론 직업의 기능이나 가치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회상황의 격심한 변동을 지켜보노라면 지금의 수험생들이 살아갈 10년 후, 20년 후의 사회가 얼마나 달라질지 아무도 예측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은 생각지 않고 시류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대학입시풍토가 요즘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 까닭은 제도에 있다. 학력고사 성적과 학교 내신성적만으로 1개교만을 지원토록 한 현행 제도하에서 눈치작전, 배짱지원이 성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도의 큰 테두리를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궁리를 해보았자 혼란과 부작용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행제도라고 해서 과언은 아니다.
금년도에 고득점자가 많은 것은 출제가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유야 어디 있건 시험을 잘 보고 어디를 갈지 몰라 걱정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는지 묻고싶다.
쉬운 출제로 고득점 자를 양산한 것이 교육적으로 과연 바람직한 지도 문제다.
고득점자가 많으면 학생들의 학력이 올라갔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도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내신성적의 비중이 높아질게 당연하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면 학교교육의 정상화롤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지역간, 학교간의 격차가 엄연히 있는 마당에 고교내신성적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무조건 환영할 수만도 없는 일이 아닌가.
「배짱」지원,「눈치」작전 등을 근원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은 선 지망, 후 입시 등으로 제도를 고치는 길이다.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도가 고쳐지길 바라면서 넓고 긴 안목을 갖고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길 모든 수험생들에게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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