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과서의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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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고교 국사교과서가 대폭 개편된다.
이번 개편은 지난해 일어났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기술사건에 대한 한국사학과 한국사회의 반응·반성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지는 우리 교과서의 첫 번째 구체적 대응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우리 국사교과서의 사관문제는 일본의 역사왜곡보다 깊어서 그 근원은 훨씬 소급되고 심지어 일제식민치하의 역사왜곡과 역사조각에까지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우리 국사교과서들은 기존학계와 재야학파의 마찰과 대결 등 심각한 분규까지 낳으면서 지난 30여 년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일제강제 하에서 역사를 배운 학자들이 대다수였던 관계로 그간의 교과서들은 부지불식간에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에 따른 국사해석이 지속되어 왔으며,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노력도 부단히 지속되었다.
재작년에 이루어졌던 국회의 국사공청회나 작년 초 이루어졌던 국사교과서의 대폭개편은 모두 그 같은 추세의 반영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국사교과서의 개편은 줄기찬 민족주체사관 회복의 반영이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개편의 내용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이란 의미에선 극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교부가 마련한 개편 안에선 모두 32개 항목이 있지만 그 중엔 특히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개편으로 강조될 수 있는 것들이 포함된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대사에서 정선처럼 되어왔던 민족이동 설을 고쳐 우리 민족이 회하, 요하, 만주 일원과 전곡 등에 50만년 전부터 거주해왔다는 민족분포 설을 내세우고 단군의 건국사실을 객관화했으며 고조선의 강역을 만주와 요서까지로 확대한 것은 그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물론 이밖에도 고대사 부문에서 만도읍락 중심사회에서 국가성립의 기틀을 보며 기자조선올 고조선 역사공백기의 보완제로 사용한 것, 그리고 선사시대부터 일본에 문화전수를 실시해 승문·강생문화 성립에 기여했음을 상술한 것 등은 모두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 역사기술 태도의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역사를 우리의 주체적 안목으로 보고 또 정당하게 평가하는 태도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역사자체의 올바른 연구·평가태도를 기른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다 하겠다.
그것은 종래 타성처럼 되어왔던 퇴폐적이고 패배적인 우리자신의 역사관을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민족주체사관으로 반전·정립하여 민족의 자존과 자신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우선 당연한 일이다.
민족사의 재정립은 민족의 긍지와 위엄을 회복하여 민족이 미래사회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단군 조선을 객관적 사실로 부각하고 우리민족의 기원을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토대로 이동 설에서 분포 설로 잡은 데 커다란 기쁨마저 느낀다.
특히 우리 고대강역을 확대하여 요하와 회하·만주일원까지 포함한 것은 일대 장거이겠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덕흥리 고분의 발굴을 계기로 고구려의 영역을 내몽고와 산서성까지 전개하고 있는 것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 역사서술의 용어에서 민족주체성을 강조한 것도 반갑다.「광개토왕」을「광개토대왕」으로,「헤이그밀사」를「헤이그특사」로 한 것 등은 종래의 타성을 일소하는 떳떳한 자신감의 반영이다.
이와 함께 아직도「조선왕조」를「이조」로 쓰는 등 일본인들이 심은 한민족비하의 잔재를 우리사회 관행에서 일소하는 노력도 게을리 말아야겠다.
특히 이번 개편에선 아직 미진한 역사사실에 대해서 여러 학설을「주」로 첨가한 태도가 눈에 띈다.
국사는 주체적 파악이 중요한 것이지만 엄밀한 학문적 토론을 거쳐 정설로 되기까지는 여러 학설의 첨가가 학생들의 판단능력을 넓히는데도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번 역사개편 안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들을 담고있어 우리 학생들의 민족적 긍지와 역사적 정립에 전보다 훨씬 크게 공헌할 것이란 기대를 갖게된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우리 젊은이들이 역사를 배우면서 인간의 올바른 삶과 역사의 정신을 올바로 터득할 수 있도록, 사실의 기술 뒤에 살아있는 진리의 저류를 볼 수 있도록 교과서 기술에 정성을 기울여야 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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