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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우린 왜 그리 조현아 혐오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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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조현아 파동을 보며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점이 있습니다. 조씨는 왜 그리 혐오대상이 됐을까? 조씨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직원에게 폭언을 하고 비행기를 회항시킨 것만으로도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요. 다만 다른 사건과 견주어서 과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형사처벌 대상까지 갔으니까요. 사람들은 조씨를 만화와 그리스신화의 괴물 캐릭터에 빗대기도 합니다.

 며칠 전 중견 커뮤니케이션 학자(경희대 박종민 교수)를 만났을 때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더군요. “위기관리 교과서와 정반대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대개 책임이 무거운 사안일수록 방어전략보다는 수용전략을 써야 합니다. 대한항공의 선택은 그 반대였습니다. 부인-공격자공격-책임전가-변명-정당화-보상-행동시정-사과. 방어에서 수용으로 가는 8단계입니다. 이 정도 중한 사안이면 시정·사과로 대처해야 했는데 부인·책임전가·변명으로 일관했다는 겁니다.

 비밀유지의 가능성도 따져봐야 했다고 이 학자는 덧붙였습니다. 비밀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납작 엎드려야 정상인데 어리석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대한항공 전직 임원에게 회사에 PR 전문가가 있는지 확인해봤습니다. 인재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을 때보다 더 큰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사내 전문가들이 판단 자체를 잘못한 건 아니었다고 하네요. 실무자의 의견을 가로막는 먹구름이 사내에 꽉 들어차 있다는 겁니다.

 위기관리 실패만으로 지금의 집단적 혐오사태를 설명하기는 부족해 보입니다. 뭔가 근원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한 달여 전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강명구 교수가 한국언론학회에서 한 기조강연이 떠올랐습니다. 강연제목은 ‘뻔뻔함과 혐오감 사이에서’였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뻔뻔함과 혐오감을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기제가 형성돼 있다고 봤습니다.

 기득권층은 자신이 나라나 회사를 위해 헌신해왔고 자신의 능력으로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는 겁니다. 반면 증오나 체념, 불안에 사로잡힌 빈곤층·중간층은 기득권층의 당당함을 뻔뻔함으로 받아들이며 극단적 혐오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강 교수의 통찰로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조씨는 자신의 능력으로 대한민국의 항공서비스가 개선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땅콩 회항’도 이를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행동하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를 뻔뻔함으로 받아들이고 몸서리를 쳤을 겁니다. 몸서리가 쌓이고 쌓였다가 이번에 폭발한 건 아닐까요.

 강 교수는 극단적 성향을 키워내는 주범으로 불온한 결탁을 지목했습니다. 세월호 때 잠시 모습을 드러낸 ‘관피아’ ‘정피아’가 그들입니다. 그들은 건전한 여론형성을 막고 비(非)기득권층에게 분노를 안깁니다. 제 방식으로 표현하면 공기(소통)의 순환을 막는 ‘음울한 먹구름’ 같은 세력입니다. 강 교수 주장을 이번 사건에 적용한다면 조씨의 뻔뻔함이 반복돼온 이유는 대한항공 안팎에 이를 조장하는 기운이 형성돼 있기 때문일 겁니다. 조씨를 포함한 임원과 국토교통부 세력이 만든 결탁 말입니다. 조씨를 조사할 때 회사임원을 배석시켜 주고, 그 사실이 알려지니까 거짓말을 한 ‘칼피아’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거론한 ‘적폐 대상’일 겁니다.

 기득권층 스스로 먹구름을 거둬내면 최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과 공론의 힘으로 환기를 시켜야겠지요. 음울한 기운이 빨리 걷히기는 어려울 겁니다. 기득권층은 계속 당당할 것이고, 서민층은 계속 몸서리를 칠 겁니다. 조씨처럼 초기에 삐끗하면 극단적 혐오대상이 될 겁니다. 기득권층은 명심해야 합니다. 스스로 만든 ‘뻔뻔함 리스크’ 경보가 우리 사회에 항상 발령돼 있다는 사실을….

이규연 논설위원